새벽에 안전 문자가 떴다. 눈이 많이 와서 결빙을 조심하라는 글이 쓰여있어 깜짝 놀라 밖을 보니 함박눈이 펑펑 오고 있었다. 어제 앞산에 오르면서 진달래가 꽃봉오리 맺은 사진을 찍으며 담주에는 피겠구나 하며 내려왔는데, 다시 하얀 눈이라니. 설경이 아름답다. 밤새 마술을 부렸나 보다. 봄꽃이 일시에 피기 전 겨울이 한 번 더 눈꽃을 피우고 싶었나 보다. '내가 더 예뻐' 하고 시샘을 부리는 거 같다.
오늘 지인이 암 수술을 받는다. 그것도 임파선과 췌장 두 군데나 한꺼번에 받는 수술이다. 며칠 전부터 마음이 무겁다. 얼마나 무섭고 힘들까 생각하니 내가 즐거운 일이 있어도 마냥 즐겁지 않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연결하기에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 새벽에 일어나 깊은 기원을 보냈다. 눈을 보니 사진과 영상을 담아 보내고 싶었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는 문자와 함께. 지인이 먼저 문자가 왔다. 오후 1시 좀 넘어할 거 같다고 한다. 나는 눈사진과 문자를 보냈다. 지인은 담당의사가 자기 같은 환자는 처음이라며 어쩜 그렇게 명량할 수 있냐 하더란다. 지인이 헤쳐온 인생을 알기에 어떤 모습으로 병원 침대에 있을지 조금은 알 거 같다. 이번이 무려 다섯 번째 수술이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늘 웃고 다닌다. 문득 작년에 남편이 입원했을 때 중환자실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풍경이 떠오른다. 불안과 초조와 걱정스러운 얼굴빛이 대기실을 가득 채워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보이지 않는 고뇌의 외침이 가득 차있었다. 그 속에 나도 있었다.
시간은 삶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기에 계속 흘러간다. 기쁨이 영원하지 않듯 고통도 영원하지 않다. 괴로움은 괴로운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시간 위에서 흘러가고 있다. 고정돼있는 건 없다.
아침에 눈이 내려도 삼월이다. 삼월은 꽃을 향해 가는 달이다. 이렇게까지 꽃들이 우리 주변에 많았어? 싶을 만큼 조금 있으면 진달래 개나리 벚꽃들이 일시에 피어날 것이다. 꽃들은 기나긴 계절을 자기의 때를 위해 견디고 보내왔다. 훈풍과 함께 살랑거릴 꽃잎들이 눈꽃 위에 오버랩된다.
아직 겨울인 지인에게도 반드시 봄이 온다. 오고 있다. 이제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 지낼 것이다.
비에도 지지 않고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날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지니며
욕심이 없이
화내는 법도 없이
언제나 조용히 미소 짓는다.
...
미야자와 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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