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자주 등산하는 앞산과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산을 우연히 갔다가 산 중앙에 아주 좋은 자연 황톳길이 있는 걸 알게 됐다. 거기까지 땀 흘리며 등산한 후 신발을 벗고 나무 아래 걷기 좋은 황톳길을 오가다 집에 오면 몸과 발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다. 오랜만에 햇살이 비치는 가을 혼자 길을 나섰다. 추석 연휴에 비가 계속 와서 숲에는 떨어진 나뭇잎이 축축이 썩어가며 불콰한 냄새가 나는 곳도 있었다. 얼마 전 때아닌 가을장마에 대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사람은
“여름에 더위가 너무 심했잖아요. 더위를 식혀주려고 비가 자주 내리나 봐요”
그 말을 듣자 왜 이렇게 자주 오냐 하던 비가 고맙게 느껴졌다. 다른 한 사람은
“지금 한창 예쁜 가을 단풍이 들어야 하는데 데 비가 하도 많이 와서 나뭇잎이 물들기 전에 다 썩어서 떨어져 버리네요.”
우주에서 보면 비는 그냥 비일 뿐이다. 자기식대로 사람들이 해석하는 게 재밌다.
듬배산 황톳길이 있는 곳에 다다르자 누군가 빗자루로 깨끗이 쓸어놓았다. 등산화를 빨리 벗고 싶어 벤치에 앉는다. 어제 비가 와서인지 맨발에 닿는 느낌이 제법 차다. 겨울이 오기 전 많이 걸어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제법 많이 오가고 있었다. 등산화 무게가 얼마나 될까? 벗으니 갑자기 몸이 가뿐해졌다. 누가 어쩜 이렇게 깨끗이 쓸어놨을까 감탄하며 솔향기 나는 곳을 거쳐 기분 좋게 걸었다. 낙엽이 예쁜 건 누군가 길을 깨끗이 쓸어놓은 상태서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걷다 보니 저만치서 목소리 큰 사람들 여럿이 떠드는 소리가 났다. 왁자지껄 몇 명이 있나 보다 하며 가까이 가보니 한 중년 남자가 혼자 휴대폰으로 통화하며 걷고 있는 게 아닌가. 숲이 떠나가라 혼자 시끄럽게 통화한다. 원래부터 목청이 큰 사람인 거 같다. 내가 목소리가 작아서 큰 사람을 부러워하는데 이럴 땐 정말 민폐다. 거기다 등산용 스틱도 아니고 쇠몽둥이 같은 거 두 개를 들지도 않고 질질 끌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걷는다. 가볍고 기분 좋은 마음이 둔탁하고 시끄러운 소리에 리듬이 깨져버렸다. 어느새 내 뒤에 바짝 붙어 오고 있었다. 그때 통화 내용이
“어 어, 그래, 맞아, 거기서 꼼짝도 않고 내가 기다렸지 뭐.”
라고 한다. 순간
‘아저씨나 집에서 꼼짝 말고 있을 것이지, 여긴 왜 올라와 시끄럽게 하냐고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좀 더 빠르게 걸어 멀어진다. 언덕빼기서 턴해서 걸어가는데 전화를 막 끊은 시끄러운 아저씨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그러더니 갑자기 쇠망치 두 개를 탁 떨어뜨리더니 옆 나무에 묶여있던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를 집어 들고는 있는 힘껏 황톳길을 마구 쓰는 게 아닌가. 질질 끌던 쇠몽둥이로는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밤 가시를 치우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헉..., 저 사람이 황톳길을 깨끗이 해주는 그 사람?’
에피소드 2
혼자 킥킥 웃으며 계속 황톳길을 걷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황톳길 같이 걸었던 지인에게 톡을 보냈더니 금세 버스 타고 내려 산으로 올라오는 중이라고 전화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가보니 어떤 사람과 같이 올라오고 있었다. 따라온 사람은 맨발 걷기 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한다. 내가 한수 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 사람이 되자 갑자기 걸음이 빨라졌다. 언제부터 걸었냐, 걸어보니 좋다. 수다가 시작되어 걷고 있는데 내가 다니던 황톳길 이외에 모래와 자갈 썩은 나뭇잎이 뒹구는 곳으로 갑자기 들어간다. 베테랑처럼 이런 길도 걸어야 한다면서 성큼성큼 앞서간다. 나는 따끔따끔 거리는 길을 걷다가 더는 걷기 싫어 일찍 왔으니 나는 이제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같이 온 사람이
“어머 아기 발인가 보네. 이런 길도 걸어야죠. 난 초보인데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걸 못 걸어요?”
라고 웃으면서 말하는데 초보한테 그런 말 들으니 기분이 별로다.
“제 발바닥이 워낙 얇아서요.”
내가 왜 이런 핑계를 대고 있지?
“난 곰 발바닥인데, 곰 발바닥 아닌가 봐요?”
이런 이런, 웬 곰 발바닥? 당신은 곰인가? 나는 많이 걸었으니 이제 그만 가야겠다고 방향을 바꿔 걷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얼른 따라온다. 난 그럴 필요 없다고 가던 길 가시라 해도 간식을 싸왔으니 먹고 가라며 귀찮게 따라온다. 괜찮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신발 있는 데까지 와서 신으려 하자, 같이 따라온 사람이 사과 대추라며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 내 손에 쥐여준다. 별로 먹고 싶지 않았는데 정성이라 하나 깨물었다.
'어머나 세상에 이렇게 달콤할 수가'
맛있다고 하자, 이번에는 옥상에서 땄다는 무공해 땡가리 열매를 종이컵에 싸와서는 내 손바닥에 가득 놓아준다. 아침도 안 먹어 배가 고프긴 했다. 쥐여주는데 안 먹을 수 없어 먹자 자꾸 또 준다. 금세 발바닥 이야기는 멀어져 가고, 나는 우적우적 먹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구운 계란까지 꺼내려고 하자 그건 정말 괜찮다고 했다.
인사를 하고 귀가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오늘의 등산과 황톳길은 하나의 글감으로 충분해 글로 적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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