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끝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니

by 서린

아이야.




아이야란 말이 어찌 이리 다정하게 들릴까.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아도 그냥 단어만 들어도 온화한 미소가 지어지네...

아이라는 단어가 주는 에너지에 잠시 빠져 머물며 글을 시작해...



아이야.


우리 매일 하는 거 있지?

정말 너무 소중한데

하고 있다는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거

그게 뭔지 아니?



바로 숨 쉬는 일이야.


우리가 잘 알아차리고 있지 못하지만

호흡은 항상 거기에 있어.




너무나도 자연스레 일어나는 일인데

우리는 긴장이 되고 호흡이 딸리고 나서야

알아차리고 깊은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려고 하지



그런데 엄마는 네가 일상에서도 코끝의 숨결을 자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단다.

왠 줄 아니?



그 순간이 이어지면 너와 세상이 하나가 되는 순간에 이를 수 있고

그 안에서 네 꿈을 찾기를 바라거든.






엄마가 기억하는 정말 평온하고 행복한 순간들은 말이지

숨결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어

아니 정확히는 내가 숨을 쉬는 것조차 인지되지 않고

모든 감각들이 아주 미세하고 고요하게 깨어나 세상 모든 것이 정지됨을 느꼈던 순간들이었어



죽을 때 내가 살면서 가장 평온했던 순간 몇 개를 꼽아 다시 느낄 수 있다면 생각이 멈추고 그저 고요했던 순간들.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되었던 순간들 같아. 그런 순간이 일상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네 일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5-6월의 봄날

고등학생 때였을 거야.

독서실 가려고 집에서 씻고 머리를 덜 말린 채 아파트 쪽문으로 향하던 중이었어.


햇살이 따사로워 눈이 자연스레 감기고

아주 옅은 바람이 살갗에 감돌고

수분으로 기분 좋은 서늘함을 머금고 있는 머리카락이 이마 위를 간지럽히며 살랑이던

그때 그 순간 그 느낌 그 감촉 그 햇살을 생생히도 기억해 잊을 수가 없단다


그 느낌이 너무 감미로워

엄마는 잠시 동안 눈을 감고 어딘가에 순간 이동을 하고 다녀온 듯한 기분이었어

세상이 멈추었고

모든 것이 정지되었고

그 찰나가 영원 같았고

그때 느껴졌던 모든 감각들이 얼마나 경이롭고 신비로운지

엄마는 그 뒤로도 종종 머리를 다 말리지 않은 채 집을 나서고는 했단다

비슷한 느낌을 찾아보려고는 했는데

그날 그 순간에 느꼈던 그 기분과 느낌이

얼마나 성스러웠는지? 경이로웠는지? 감미로웠는지? 모르겠어 어휘력이 부족해 표현할 단어가 없네.


막 아주 잔잔하고 미세하고 가벼운 가운데 고요하고 신기하고 신비롭고 부드럽고 따듯하고 세상이 멈춘듯한 그런 느낌을 표현하는 단어. 지금 딱 그런 단어가 필요한데 누가 하나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싶어.




또 한 번은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는데

천장 조명에 비쳐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물줄기를 물끄러미 보며

물방울의 움직임 물방울의 반짝임

물줄기의 소리 살갗에 닿는 느낌에 매료되어 잠시 넋을 놓고 그것을 바라보며

나를 잊고 이곳을 잊고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세상에 물방울과 반짝임과 나만이 존재하는 듯한

그런 신비로운 경험들....



너와의 경험은 아직까지는 딱 한 번 있었어.

네가 만 4살 정도의 어느 날 오물오물거리며 혼자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데

잠시 그냥 그 모습에 멍했단다

찰나의 경이로움 안에 갇혀

아니 그 찰나에서 내가 너와 만나

모든 세상이 정지된 느낌

너는 오물거리는데

나는 그 순간이 마치 32배속 느리게 틀어놓은 영상처럼

아주 천천히 미세하게 너의 표정 눈빛 얼굴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눈에 각인시켰단다





엄마는 만약 천직을 찾는다면 그 일과 내가 하나 되는 느낌을 자주 느끼고 싶어.

몰입이라는 단어로 조금 부족한 느낌이지만

물아일체의 순간을 느끼며 하늘이 엄마에게 이번 생에 주어진 일을 하며 살고 싶단다.

이제부터 찾기 시작하려는 거고.





아직까진 엄마에게 그런 순간들이 아주 드물게 찾아오더라.

삶이 너무 바쁘고 머릿속은 해야 할 일들로 쉴 새 없이 돌아가서

고요함을 느끼기에 뭐 그리 분주한 지



고요함을 찾고 싶어 명상을 하러 다녔는데

고요함은 저 멀리 어딘가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내 안에 있는데 그냥 일상에서도 느낄 수 있는 건데

고요함을 느끼기 어려운 세상에서 느끼기 어려운 방식으로 엄마가 살고 있더라고



엄마가 호흡을 바라보고 고요를 시도하며 그래도 제일 크게 배운 게 뭔지 아니?


그건 바로 믿음이야.



호흡을 의식하는 순간

엄마가 숨을 조절 하려고 하는 거야

느끼려고 애를 쓰고

자꾸 내 호흡이 깊은지 얕은지 판단하려고 하고

몸 어딘가에 긴장이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고

자연스러운 숨결에 엄마를 맡기지 못하고

생각이 끊임없이 개입을 하더라고.


그런데 그냥 마음을 비우고


느껴지지 않아도

호흡은 그저 늘 그 자리에

엄마의 코 끝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그 사실을 믿으면

정말 그 믿음이 아주 미세한 감각을 일깨우게 되더라



코 끝의 숨결을 느껴보며 엄마가 배운 것은

결국 우리는 매사에 믿음을 가지기가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

숨결을 느끼기 위해 감각을 이성으로 동원시켜 자꾸

집착하고 붙잡으려 한다는 사실이야.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한다고 믿는다는 그 마음 하나면 충분하구나


삶은 그냥 그런 것이구나


돈도 명예도 사람도 아닌 아니 그 이전에

그저 세상과 내가 하나 되는

그 자체의 경험이 내가 되는

나로서 온전한 공간을 많이 느낄 수 있으면

이번 생 잘 살았다고 생각하거든




그런 순간을 많이 느끼면서

돈도 벌면 좋겠다야.



네가 하는 그 일이

세상과 네가 하나가 되는

그래서 그 일이 네가 되고 네가 그 일인

그런 일을 찾아 너의 소명을 다하는 삶을 살길 바라



어쩌면 그 출발은

네 코 끝의 숨결이 고요하고 미세하게 느껴지는 그 무언가에서 출발할지도 모르겠어.





너의 꿈을 찾기 위해

시작은 심장 뛰는 벅참으로 너를 인도하고

코 끝에 느껴지는 미세한 숨결로 무아지경에 이르는 그 무언가를 잘 찾아나가길 바랄게!!



엄마도 그런 일 찾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단다!!

중간중간 엄마가 네게 진행상황이 어떤지 잘 보고할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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