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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몬디 Sep 11. 2023

#5 한국은 빨라서 좋고 스페인은 느려서 좋아

좋아 우리 오늘 여행도 한번 설레보자


아침 7시. 초겨울의 찬공기를 맞으며 숙소 현관을 나섰다.


"약속시간까지 10분 남았네. 가는데 얼마나 걸린대?

"음... 15분"

"뭐라고?"

"뛰자!"


바삐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바르셀로나. 우리는 시원한 아침 공기를 맞으며 정신없이 달린다. 아침잠이 많아 늦게 일어나기 일쑤인 내가 새벽 6시에 일어나 이렇게 일찍 여행을 시작하다니. 그것도 바르셀로나에서! 역시 여행의 설렘은 피곤한 사람도 부지런하게 만든다.


11월 말의 초겨울 날씨는 적당히 기분 좋을 정도로 시원하다. 어릴 적 겨울에 엄마랑 목욕탕을 갔다가 나왔을때 느껴지는 약간은 따끈따끈한 몸과, 얼굴을 스치는 기분 좋게 차가운 공기처럼.


주변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침을 바삐 맞이하는 현지인들로 가득하다.


잠시 잊고 있었다. 


우리에게 이곳 바르셀로나는 여행지이지만 또 다른 세계에서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그래서인지 그 속에서 여행을 즐기는 우리의 이 순간이 더 행복하고 설렌다.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인 아침, 우리의 모습과 주변이 더욱 대조돼 보인다.


일상을 보내는 현지인들 속 여행을 즐기는 우리. 이 모든 게 행복한 우리는 바쁘게 뛰어가는 와중에도 상냥히 눈을 마주치는 현지인들에게 아침 인사를 여기저기 축복하듯이 날려 보낸다.


"부에노스 디아스!(Buenos días), 부에노스 디아스!(Buenos días)"

"좋은 아침이에요!"


지금 이 두근거림은 촉박한 시간 때문일까, 설렘 때문일까


의외로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그냥 별것 아닌 사소한 순간들이다. 시원한 초겨울의 아침 공기를 맞으며 달렸던, 이제는 한결 편해진 여기. 하지만 여전히 설레는 이곳에서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바르셀로나의 도심을 달렸던 이 순간. 바삐 출근하는 현지인들과 여행자인 우리가 다르게 맞이하는 아침 풍경. 그게 뭐라고 이번 스페인 여행 중 기억에 남는 순간들 중 하나다.


좋아 우리 오늘 여행도 한번 설레보자




브런치 북

<내가 돈이 없지 낭만이 없나> by 시몬디


함께 들어보세요. 이 날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

https://youtu.be/yz9mAxCvRIw?si=sebYBldvPIHHzii_




정신없이 달려 겨우 시간 맞춰 도착한 곳에는 이미 투어를 기다리는 한국인들이 모여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한 번의 어색한 눈인사. 어제 고딕지구 야간투어를 해주셨던 가이드 님을 또 만났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저희"



그녀는 자신을 가우디의 열성팬으로 소개하고는 가우디의 일생과, 작품을 설명한다. 


늘 혼자서 자연을 관찰했고, 사람들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는 사람. 가우디의 인생은 꽤나 외로워 보인다. 그는 긴 무명의 시간을 보냈고, 함께 살던 친형이 지병으로 요절해 버렸고, 어머니,  누나, 아버지도 연달아 떠나보냈다고 한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던 가우디가 정말 혼자가 되어버린 거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삶. 그의 일생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아서 마음 한편이 짠해졌다. 한편으로는 가우디가 그때 그 무명시절과, 힘든 시간으로 모든 것을 포기할법한데도 도리어 일에 매진하며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숙연해졌다.


‘내가 지금 힘들어할 자격이 있나? 저렇게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도리어 천재성을 뽐내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사소한 티끌에도 실망하는 나약한 사람이구나.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난 저정도로 극단적인 일도 없었는데 왜그렇게 무기력하게 힘들어하는 거야 대체'


겉보기엔 명예스러워 보이면서도 외롭게 느껴지는 그의 일생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분명 큰 사람이 맞다.





아무렴 어때 한국은 빨라서 좋고, 스페인은 느려서 좋아요


까사 바트요, 까사 밀라 다음으로 도착한 구엘 정원. 도착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다.


입구까지 걸어가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침에 바람이 많이 불어 이날은 개장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


"저희 한국에서 이거 보러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의 열정적인 진호 가이드님은 어떻게든 우리에게 구엘공원을 보여주려 몇 차례의 대화를 하며 애써보려 했지만, 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그녀의 말에 따르면 아침에 바람이 많이 불긴 했어도 날씨가 바뀌어서 지금은 괜찮은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이미 내린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스페인은 한국에 비해 일처리가 많이 느리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같이 투어 하는 한국인들은 문화 차이를 실감하면서 공감하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번 한국의 빠른 서비스와, 사람들의 노고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한국은 빨라서 좋고, 스페인은 느려서 좋다. 


한국의 빠름은 매일같이 느껴봤으니, 이곳에서는 한없이 느려도 괜찮다. 스페인의 느릿함은 성격 급한 나도 여유를 부리게 만든다.






뜻하지 않게 만난 동화 같은 골목


우리는 결국 구엘정원을 가로막는 철문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괜찮다. 들어가 보지도 못했는데 왜냐고?

덕분에 그다음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긴 스토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이런 이쁜 사진도 찍었고.




스페인은 거리 곳곳이 아름다운 세트장 같다.


전체적으로 베이지, 노랑 빛의 톤온톤으로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건물들은 로맨틱한 도심 경관을 만들어 낸다.


난 유명한 스폿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이리저리 둘러보며 걷다가 내 눈에 이쁜 곳, 거기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유명한, 일명 포토존이 있고,  인기가 없고 겉으로 보기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그런 곳이 있다면 후자를 찾아 나선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 이 아니라 내가 좋은 곳이 좋다. 오히려 사람이 없을수록 더 좋다.


기대를 접고 걸어 내려가던 중 내 눈을 사로잡은 이 골목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구엘공원을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허탕 친 나는 아침부터 뭐가 그리 좋다고 동화 같은 이 골목을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어다녔다. 예상치 못해서 더 좋다.


어딘가에 가만히 서서 뻘쭘한 포즈를 취한 사진이 아니라, 이름도 모르는 이곳에서 찍은, 날리는 머리카락에서부터 신난 기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사진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끼는 사진 중 하나다.






로맨틱한 여행을 원한다면 드로잉



우리는 어딘가 환상적인 곳에 가면 말없이 감상하는 시간을 꽤나 길게 갖는다. 


그리고는 각자 노트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다. 누군가 양해를 구하거나, 굳이 말을 꺼낼필요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서로가 그 상황을 암묵적으로 안다. 그 순간 느낌과 잘 어울리는 노래가 있다면 하나 틀어놓고 꽤나 진득하게 그 시간을 즐긴다.


말없이 펜과 연필을 사각이며 여행에 집중했던 순간을 내내 함께한 그 노래는 향수처럼 우리의 또 하나의 기억조각으로 자리 잡는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시끌벅적하게 정신없이 다니는 여행은 조금 멀리 하게 되었다. 문득 내가 말없이 감상에 잠겨도 눈치채고 그 몰입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좋다. 혼자 인 듯 함께인 그런 시간 말이다.


바쁘게 시간에 쫓겨 사진만 찍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대로 감상하고 표현하는 여행.


정말 좋다.


색다른 여행을 원하거나 온전한 감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몇 차례의 드로잉을 할 예정이다.





드디어 사그라다 파말리아



스페인 바르셀로나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가우디다. 가우디 하면 떠오르는 것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고.


처음 들어본다는 사람들도 '유럽에서 120년 동안 아직도 짓고 있다는 디즈니 성 같은 성당'이라고 하면 대부분 알정도로 매우 유명하다.


얼마나 웅장할까.

얼마나 멋있을까.

내부 입장을 앞두고 가슴이 뛴다.


안으로 들어섰다 드디어







입장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신이 나 쫑알대던 우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도 더 웅장하고 숭고한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규모와 스테인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붉은빛과 푸른빛의 색채가 강렬하다.


우리는 무언가 홀린 듯이 멍하니 몇 발자국 걷다가, 늘 그렇듯이 서로의 침묵과 감상을 방해하지 않고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그러고는 한참을 눈을 감고 그 숭고한 분위기를 만끽했다. 바르셀로나 여행을 하면 꼭 온다는 이곳 사그라다 파밀리아.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시끄럽거나 혼잡하지 않고 고고한 분위기를 뽐낸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오르골 같은 청아한 소리는 그 신성한 느낌을 더욱 증폭시킨다.


그렇게 눈을 감고 공간을 느낀 지 몇십 분이 지나서야 조심스럽게 눈을 뜨고 곳곳을 관찰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을 때는 또 다른 웅장함과 디테일에 우아하곤 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내부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곳곳을 돌아다니며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대체 당신 삶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가우디



가우디의 작업실을 재현한 곳. 생각보다 매우 협소하다.


'혼자 작업만 하며 여생을 보냈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소박할 줄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오늘 오전부터 하루종일 그의 작품을 보며 감상하고, 감탄하고 마지막에 이곳을 들렀는데. 앞서 봤던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성당의 화려함과는 너무 대비되는 작업실이 나에게는 조금 씁쓸하게 느껴진다. 오늘 하루 그의 인생을 알아가면서 참 많이 공감하고 이입했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그의 감정을 넘겨짚는 게 무례할 지도 모르겠다. 가족들을 그렇게 연달아서 여위고, 사람과는 벽을 쌓고 신만을 위한 성전을 만들겠다며 좁은 작업실과 현장에서 일만 하다가 전차에 치여버린 그의 삶이 난 참 애석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전차에 치인 후 병원에 실려가는 과정, 도착한 후에도 그의 남루한 행색 때문에 방치된 그는 빠른 치료를 받지 못했다. 가우디는 지금 전 세계의 사람들이 선망하는 건축가로 명예로운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외롭게 머물다 갔다.


오늘 하루종일 가우디의 일생을 간접적으로나마 되돌아보면서 삶의 의미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


그를 사람으로서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우리가 멋지다며 마냥 신기해했던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한 사람의 일생과, 치열한 외로움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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