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삶인데 즐겁게 살자

by 임기헌

학창시절 때 소개팅 자리는 서로 머쓱해하며 성패는 외모로 판가름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학 졸업 후 사회 생활이 시작된 후에는 연봉과 직장을 따진다. 그러다 결혼적령기가 된 30대가 되면 집안과 속궁합까지도 고려를 하게 된다.


이혼을 하고 38살즈음 됐을 때 우연찮게 서울의 한 선배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한 적이 있다. 그녀는 과거를 중요시 했다. 주로 왜 이혼하게 됐는지에 관해.


이후 정확히 3명의 이성과 교제를 하게됐고, 시기의 문제지 갈등의 서막은 결국 ‘이혼의 사유’로 모아졌다. 그들 모두에게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정밀하게 설명을 해줬지만, 찌꺼기가 흥건히 남았는지 내 역량으로는 관계를 이어나가기가 버거웠던 것 같다. 아무 이유도 없고, 정말 사소한 성격차가 겉잡을 수 없이 축적돼 이혼도장을 찍은 것 뿐인데, 무어라 더 설명을 해야될지도 몰랐다.


그러다 어느새 44살이 됐다. 요사이 친구네 제수씨들 지인이나 혹은 우연찮게 갖는 만남이 꽤나 잦은 듯 하다. 불러내는 술수는 한결같다. 돈까스 장사 한다는 얘기는 쏙 빼놓고 ‘기자 출신의 어떤 책 쓰는 놈이 하나 있는데,,’ 하며 밑밥을 까는거다. 그리고 인터넷과 SNS 검색을 한 뒤 나의 정보 모두를 들춰내 보여준다. 그런 확인 절차가 다 끝난 뒤에야 나한테 연락이 오고 나는 뭐라도 된 마냥 의기양양 한 기분으로 그 자리에 합석을 한다.


좋다. 마치 종을 치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이런 순간들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사피엔스를 경멸하는 마음에 혼자 살겠다고 한 다짐은 나를 주연으로 둔갑시켜 주는 군중이 모인 자리에서는 희석이 된다. 대학 때 즐겨하던 술자리 게임을 하고 드립을 쏟아내며 나는 어느새 또 자리를 주도해간다. “2차만 갈거면 왜 불렀어요?! 해 뜨는건 봐야지!! 3차 고고!!ㅎㅎ” 하며.


와중에 마음이 꿈틀대는 경우도 있고, 화장실 가는 길에 고백을 받기도 한다. 이제뭐 잠자리가 대수랴, 서로 불꽃이 튀면 호텔로 향하는거도 어렵지가 않다. 섹스하면 사겨야 된다는 낡은 공식도 진부하다. 누군가는 큰(?) 남자가 좋다고 하고, 또다른 누군가는 스킬(?)이 뛰어난 남자가 속궁합이 더 맞다고 썰전을 벌이기도 한다. 20대 유학시절 때 선진국의 학생들과 나눴던 보통의 이런 대화들을 우리나라에서는 중년이 된 지금에서야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오묘하긴 했다.


이토록 쿨한 세상이 나는 좋다. 낯설지만 낯설지도 않은 광경이다.


옛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를 기억한다. 세이렌의 유혹이 도사린 바다를 지날 때, 그는 자기 몸을 돛대에 묶게 했다. 그의 마음은 세이렌의 유혹에 넘어갔지만, 몸은 돛대에 묶여 있기에 목숨을 구했다는 설화다.


오늘도 나는 힘든 유혹을 버텨냈다. 내 몸은 다시는 여자를 사귀지않겠다는 다짐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건진 셈이기도 하다.


사랑, 섹스, 설레임, 참 매혹적이고 견딜 수 없을만큼 좋은 것들이다. 다만 미래시점을 창의하여 또다시 역산하다보면 불행하다는 걸 나는 빤히 알 수 있다.


변수조차 고려치 않아도 될 정도로 경험치가 쌓여서일거다. 그래서 혼자가 좋다. 집에서 빵구도 뿡뿡끼고, 새벽에 일어나 라면을 끓여먹고, 온종일 책 속에 파묻혀 활자 놀음도 하고,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다트를 던져 꽂힌 곳으로 자유롭게 여행도 갈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정말 예쁜 가정을 꾸려 다정한 아빠가 되고 싶다. 그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둘 최고의 꿈이다. 딸 아이와 자전거도 타고 싶고, 도서관에 가서 함께 책도 보고 매점에 들려 떡볶이도 함께 먹고싶다.


나의 부덕함과 그에 따른 소치가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는 걸 잘 알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너무 슬프지만, 괜찮다. 친구, 선후배들 모두가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과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이제는 웃음이 돈다.


짧은 삶인데 즐겁게 살자.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게 아닌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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