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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삿갓 Dec 25. 2024

인도가 준 선물

23년, 남인도를 걸으면서 든 생각

절대란 없고, 다양하게 변화할 뿐이었다. 인간 성장도 이처럼 탄생했다 사라지고, 결합하고, 변하기를 반복한다.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면 겪게 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기에 생각, 가치관 등이 변했다는 사실은 사소한 것이며 어떻게 변화되고 계기가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닐지 싶었다.


인간은 주어진 삶 속에서 본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변했다는 사실에만 매몰된다면 나약한 우린 금방 무너질 것이다. 자기혐오와 자책에서 쉽사리 빠져나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스러운 현상이겠거니 순응하고 변화를 받아들여보는 것이 어떤가.


엘로라에서 다양한 종교의 유적이 공존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엘로라처럼.


하염없이 흐르는 모래시계를 툭 건드렸다. 가로로 눕혀진 모래시계는 더 이상 아래로 흘러갈 수 없었다. 미친 사람처럼 음악에 몸을 맡기는가 하면, 혈관을 타고 흐르는 액체가 알코올인지 피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술을 마실 수 있는 고아는 잠시 세상과 분리된 듯한 마법 같은 공간이었다. 파도가 높이 치는 고아의 해변을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시시각각 바뀌는 풍경만 인지할 뿐이었다. 정신없이 서로에게 물장구를 치며 가장 찬란한 젊음을 즐기는 청년들이 보였다. 아이에게 다리부터 천천히 물을 묻히며 바다를 알려주는 부모가 보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햇살은 진해졌고, 부서지는 파도에 몸을 맡겨 금빛을 온 바다에 퍼뜨렸다. 그곳을 지나는 모든 존재는 빛나다 못해 눈부셨다. 시간이 멈추기를 바랐지만 어두워지는 하늘을 막을 수 없었다.


어둠은 찾아왔고, 야속하게도 다시 빛을 보려면 시간이 흘러가길 바라야 했다. ‘흘러가는 시간은 붙잡을 수 없다’라는 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붙잡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의 감정을 느끼며 지워지지 않는 카펫의 얼룩진 흔적처럼 더욱 선명하게 남는 것이 아닐까.


뱃사공은 자기 몸의 3~4배가 되는 긴 장대를 이용하여 배를 움직였다. 천천히 깊숙하게 넣은 뒤, 뒤를 돌아서서 크게 한번 땅을 친 뒤 천천히 다시 뺐다. 반복되는 동작으로 배는 앞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고요했다. 장대를 휘젓는 순간에만 물의 파동이 생기고 작은 물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뒤쪽에도 뱃사공이 있었다. 두 명이 똑같은 속도로 노를 젓는 것이다. 둘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일정히 동작을 수행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노 젓는 행위를 반복하느냐는 어리석은 궁금증이 생겼다. 어떤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뱃사공은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뿐일 것이다. 온전히 행위에 집중하여 하나하나 동작을 이어 반복하는 것이다. 눈앞에 주어진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가장 어려운 일을 그들은 해내고 있었다. 변하지 못할 상황이거나, 여기서 더 나아질 거라는 장담이 없을 때, 어쩌면 사명이라 여기고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것은 포기가 아닌 순응이며, 순리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 순간 어떤 기적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은 인간에게 현실의 암울함을 이겨낼 수 있는 한줄기 빛이다. 절실함에서 피어난 강렬한 믿음으로 기적을 만드는 아름다운 현상이 적잖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적은 신의 손짓 같은 마법이 아닌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난다. 가장 간단한 예로 사막의 오아시스나, 환자를 살리겠다는 신념을 가진 의사다.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사물,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신을 믿는 올바른 방법이 아닐지 싶었다. 언제 그것이 신의 선물 혹은 신을 대변하여 눈앞에 나타날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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