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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영 May 20. 2024

승리하는 PT 실패하는 PT

모두가 아는 여우와 두루미라는 이솝 우화가 있다. 

'어느 날 여우가 자신의 저녁 식사에 두루미를 초대했고 두루미를 반갑게 맞이한 여우는 둥근 접시에 음식을 담아 내왔다. 그러나 부리가 긴 두루미는 그것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2023년은 힘든 한 해 였다. 

출발은 좋았다. 10개 대행사를 제치고 100억짜리 광고주를 영입했다.

하지만 100억을 쓰겠다던 광고주는 약속한 캠페인을 진행하지 않았다. 

한 해의 수익을 예상하며 목표 수익을 맞춰 놓은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수익을 맞추기 위해 다른 캠페인을 찾기에도 너무 늦은 시기였다. 


설상가상, 경기가 좋지 않을 것을 예상하며 욕심을 부렸던 PT들도 번번이 떨어졌다. 

펜타클에서 캠페인 부문을 맡으며 해마다 50% 넘는 수주율을 기록했지만 2023년의 수주율은 30%를 겨우 넘었다. 잘 될 때는 몰랐는데 PT에서 떨어지는 수가 늘어나자, 궁금했다. 

승리하는 PT와 실패하는 PT를 가르는 원인 무엇이었을까?


돌아보니 어떤 제안은 압도적으로 승리했으나 어떤 제안은 맥없이 실패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지난 5년간 참여했던 제안을 분석하기로 했다. 참여했던 PT들을 엑셀 시트에 정리했다. 

무엇이 PT의 승패를 가른 걸까? 상수와 변수들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광고주는 대기업인가? 중소기업인가?

-광고주는 광고 집행 경험이 많은가? 적은가?

-과제는 브랜딩이었나? 퍼포먼스였나?

-광고주는 마케팅팀이었나? 사업부가 주관한 것인가?

-예산은 얼마였나?

-PT에 들어온 의사 결정자의 레벨은 어디까지 였나?

-경쟁PT의 최종 결정엔 누가 관여하는가?

-우리는 PT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여했는가? 어떤 팀이 주관했는가?

-PT에는 얼마나 많은 인력이 투여되었는가?


PT의 승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을 상세하게 분리했다.

또한 정성적 데이터를 배제하고 정량적 데이터를 통해 승패의 요인을 찾아보고자 했다. 

분석을 시작하자 서서히 승리와 실패에 연관성이 있는 변수들에 경향성이 나타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경향성을 통해 나타난 변수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 있었다. 

펜타클의 PT 승패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광고주의 광고 경험' 이었다. 

광고주가 얼마나 많은 광고 집행 경험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승패에 큰 차이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펜타클은 광고 집행 경험이 많았던 광고주의 PT에서 승리한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그 반대의 경우에는 비딩에서 대부분 떨어졌다. 

왜 이런 결과가 만들어졌을까?


결론은 우리가 맞다고 생각했던 방향의 제안이 모든 광고주에게 좋은 제안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글의 처음에 나온 이솝우화처럼, 먹을 사람을 생각하지 않은 광고를 만들고 있었던 거다. 


펜타클이 여러 PT에 승리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기존 대행사에서는 받아보지 못했던, 논리적 근거와 데이터에 기반한 전략과 크리에이티브의 새로움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런 피드백을 긍정적으로만 생각해 왔었고 모든 광고주에게 같은 방식의 제안을 해왔다. 


하지만 모든 회사가 우리 방식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광고의 집행 경험이 많았던 광고주는 펜타클의 방식을 새로워했다. 그리고 기존 대행사의 제안이 식상했던 그들은 우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반면 광고 경험이 많지 않았던 중견 기업들은 오히려 펜타클의 제안이 낯선 것이었다. 광고 경험이 적었던 광고주들은 전통적 광고 방식을 좋은 광고의 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펜타클의 제안은 그런 그들의 기대를 넘어서는 낯설음과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먹지 못할 그릇에 음식을 담아 주며 맛있게 먹으라는 꼴이나 다름 없었다. 


광고 승패의 영향을 주는 변수는 이 뿐 아니었다. 

광고를 주관하는 부서가 브랜드팀인지, 사업팀인지에 따라 각각 기대가 다르고 그것이 점수에 영향을 미쳤다. 최종 의사 결정 방식이 실무자들의 정량적 점수 취합인지, C레벨의 단독 결정인지에 따라서도 차이가 존재했다. C레벨이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 역시도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지피지기면 백전 백승. 어린 아이도 알 만한 손자병법의 승리 방정식을 정작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또 하나의 변수는 재미있게도 아이디어 회의의 횟수였다. 10번 이상의 회의를 진행한 제안은 승률이 무려 70%를 넘었다. 그렇다고 모든 제안을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공을 들인 제안은 확실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여러 유명한 리더들이 실패를 두려워 말라고 한다. 오히려 독려하라고 말한다. 실패에는 분명 가치가 있다. 하지만 실패가 가치를 갖기 위해선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2024년 현재 펜타클의 수주율은 80%를 넘어섰다. 언제든 이 숫자는 더 작아질 수 있음을 잘 알지만 분명 펜타클은 실패로 부터 얻은 것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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