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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영 May 13. 2024

딴 짓

광고대행사에 일하고 싶은 꿈은 대학시절부터였다.

하지만 지원한 대행사에 모두 떨어지자 자연스레 카피라이터의 삶이 아닌 마케터의 삶이 시작되었다.


마케터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소설책을 전공책처럼 끼고 살았던 내게, 필립코틀러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낯설었다.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방법은 독서였다. 소설책과 시집이 있던 자리에 마케팅 관련 도서들이 들어왔다.

광고주로 있던 십 수년간을 그렇게 살았다. 조정례, 김영하, 안도현, 함민복을 대신해 세스고딘이나 잭트라우트가 마케터로서의 삶에 큰 영향과 도움을 주었다.




내년이 되면 광고대행사에서 일한 지도 10년 차가 된다.

지금도 버릇처럼 마케팅 신간이 나오면 장바구니에 넣는 나를 발견한다.

광고대행사에 와서도 전략과 방법론 측면에서 마케팅 관련 도서의 도움을 받긴 한다.

하지만 마케팅 도서들은 광고의 전략과 크리에이티브에 결정적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광고의 전략과 컨셉, 크리에이티브 아이디어들은 마케팅 책이 아니라 일상의 도처에 숨어 있었다.

음악의 한 구절, 여행의 실수, 아이의 행동, 취미로의 야구시청, 과학 유튜브 채널, 환경 다큐멘터리, 아내의 이야기, 코미디 프로, 한 구절의 시 그런 것들 속에서 아이디어 단초들이 움트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상품이나 서비스의 광고 전략을 짜는 일은 소설을 쓰는 일과도 닮아 있었다.

PT을 준비하며 내가 하게 되는 주된 일은 상품이나 서비스의 전략 방향을 설정하고 전체 장표의 흐름을 짜는 일이다. 문서의 한 장 한 장이 넘어갈 때마다 다음장이 궁금하고 궁금증 뒤에는 문제가 해결되는 완벽한 기승전결로 감동을 끌어내야 한다. 감동의 여부는 마치 베스트셀러의 인세처럼 수십억의 매출을 결정하기도 한다.

전혀 상관없을 거 같았던 나의 전공이 광고대행사에서 이렇게 쓰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광고라는 결과물은 이렇게 서로 연관되지 않은 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신기한 구석이 있다.

최근 후배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에게 이제부터 최대한 많이 '딴짓'을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에게 '딴짓'을 권한 것은 그가 이미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법'을 터득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방식에 무슨 대단한 비법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확실히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방식에서 자신만의 방법론을 만들어낸 듯했다.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가는 방식은 보통, 전략 방향이 만들어진 후 그 방향 안에서 키 컨셉을 찾아내고 컨셉에 맞는 구체적 영상 아이디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보통은 전략 방향 안에서 키 컨셉을 만들기 위해 모두 힘을 쏟는다. 하지만 여러 동료들이 전략 방향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한다. 이러한 시도 또한 독려되어야 한다. 제시된 방향을 벗어나 더 좋은 컨셉이 나올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 시간만 허비되고 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제시된 방향안에서 아이디어를 파더라도 주위를 맴돌아 핵심에 도달하지 못하고 사장되는 아이디어들이 많다. 제시된 방향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제시했던 좋은 아이디어에 대해, 그는 내가 전략 방향을 위해 쓴 문장이 아이디어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시된 방향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했고 이해한 것에 더해 나도 생각지 못한 크리에이티브를 찾아내 치환시킬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이제는 '딴짓'을 많이 하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고, 취미를 즐기고,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보고 들으라고 일러 주었다.

90%는 좋아하는 것의 경험에 쓰지만 나머지 10%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보라는 조언도 해주었다.

광고와는 상관없을 듯한 딴짓들이 분명 광고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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