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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영 Apr 29. 2024

광고회사에 다니지만 광고를 만들지 않습니다.

나만의 업에 대한 의미 찾기

개인적으로 생각한 광고의 정의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로 브런치 북의 연재를 시작하려 한다.

하나는 '광고는 가치를 찾는 것', 다른 하나는 '광고는 서비스업'이라는 것.

이번 글에서는 가치를 찾는 것으로서의 광고에 대한 이야기다.


광고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소비 대중을 대상으로 하여 상품의 판매나 서비스의 이용 또는 기업이나 단체의 이미지 증진 등을 궁극 목표로 이에 필요한 정보를 매체를 통하여 유료 또는 무료로 전달하는 모든 홍보행위'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광고가 있다.

스마트폰 속에, 지하철에, 버스에, 정류장에, 공항에, 고속도로에, 라디오 속에, TV에...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크게는 광고를 해서 서비스와 제품을 팔아 이익을 내는 광고주.

그 광고주가 광고의 전략과 크리에이티브를 맡기는 광고대행사.


전 세계 광고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자면 당연, 오길비다. 오길비는 광고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팔리지 않는 것은 크리에이티브가 아니며, 광고는 예술이 아니다. 광고는 광고인의 천재성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제품을 판매하기 위함이다'


광고주로 오랜 시간 일하며 생각한, 광고의 정의는 오길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광고주 생활을 마치고 다시 10년 가까이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며 생각이 달라졌다.

여전히 오길비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광고에 대한 정의를 생각해 본다.


그 첫 번째가 '광고는 가치를 찾는 일'이라는 정의다.

이런 정의를 내려보고자 한 시작은, 광고를 만드는 작업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광고업에는 크게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돈을 받는 대가로 광고주가 시킨 과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제가 돈을 주고 시킬 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돈을 받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돈을 받은 만큼의 가치를 광고주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을 낸 사람이 마음에 들 때까지 광고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맞다고 확신하거나 소비자 설득이 가능한 광고를 만들 때 보다, 광고주의 마음에 드는 광고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광고대행사의 일이 힘든 건 딱 그 지점에 존재한다.


'단순히 업무를 위한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닌, 열정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해야 하는 일을 이렇게 정의했다. 애플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란 거다. 애플에 다녀본 적 없으나 일이 힘들 때 애플의 누군가는 자신이 하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위안 삼아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광고를 업으로 하는 일의 어려움을 알아챘을 때, 힘든 과정을 이겨낼 업의 의미가 나에겐 필요했다.

일의 의미를 정리하면 어려움을 맞닥뜨릴 때, 좀 더 오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기업에서 일하던 시절에도 터득한 바였다. 광고업도 그게 필요했다.


그저 창의적인 일이어서, 내가 만든 광고가 TV에 나와서, 가끔 연예인을 볼 수 있어서... 같은 것들은 광고가 재미있는 이유는 되지만 내가 꼭 이 일을 해야 하는 의미가 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의미를 찾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광고대행사의 경험이 5년을 넘어가고 여러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비로소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조금씩 정의 내릴 수 있을 거 같았다.


그것은 광고주도 소비자도 모르는 제품의 ‘숨어 있는 좋은 가치를 찾아주는 일’이었다.

이런 정의를 가능하게 해 준 결정적 계기는 정관장의 어린이 홍삼 브랜드 '홍이장군' 캠페인을 기획한 후였다. 당시 홍이장군은 서서히 매출이 하락하고 있었다. TV광고는 효과를 내고 있지 못했다.

원인을 찾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우며 노력했고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홍이장군의 제품은 3세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3단계로 나눠져 있으나 TV광고는 광범위한 아이들의 면역력에 초점이 맞춰 있었다.

하지만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면역력이 아이들의 나이 대에 따라 다르게 소구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미취학 아이들은 어린이집의 단체 생활을 통해 감기나 수족구 같은 다양한 감염성 질병에 노출되고 있었다. 반면 취학을 하면 감염성 질병은 현저하게 줄고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 저하를 경험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취학과 미취학 어린이로 타겟을 구분하고 각각 감염성 면역력과 스트레스 면역력을 소구 했다. 두 타겟의 부모들은 광고에 크게 공감했고 매출 역시 예상치를 초월했다.

우리가 이 캠페인을 맡기 전, 홍이장군 광고를 진행한 곳은 국내 1위의 광고대행사였다.


다양한 브랜드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같은 제품을 놓고도 광고대행사마다 다른 전략을 만들고, 광고주조차도 제품의 표면적 가치를 넘어 숨어 있는 가치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좋은 제품의 숨어 있는 좋은 가치를 찾아주면 광고주는 물론, 소비자들 역시 그 가치의 유용함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내가 생각한 광고의 정의, 업의 의미는 '광고주도, 소비자도 몰랐던 좋은 가치를 찾아서 둘 모두에게 전달해 주는 일'로 정리되었다.


쉽지 않은 광고주를 만나 일이 힘에 부칠 때, 끝날 거 같지 않은 경쟁 PT가 지속될 때,  수주실패의 연속으로 마음이 지칠 때, 여러 동료들의 넋두리처럼 나도 '광탈'하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럴 때마다 그동안 여러 캠페인을 통해 우리가 찾아낸 숨겨진 좋은 가치를 경험한 광고주와 소비자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캠페인을 통해 찾아낼 새로운 가치들을 기대한다.


이런 정의로 인해 해야할 일의 고달픔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광고주가 원하는 광고를 만들어주는 일, 시킨 일만 잘해 한 편의 광고를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광고주도 미처 알지 못한 제품의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일은 험난한 과정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까 괜히 시키지 않은 일을 해서 사서 고생하는 일이다.

그래도 언제나 그런 일이 더 보람찼고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광고를 업으로 시작하려거나 , 광고를 막 시작한 후배들도 광고라는 업의 의미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만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 일이 힘들어질 때 그래도 조금은 힘을 내서 더 앞으로 갈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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