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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영 Jun 17. 2024

세상을 반 발 앞서 봐야 하는 일

정관장 홍이장군의 광고를 만들 때 일이다. 펜타클이 만든 광고는 온에어 후 매출이나 소비자 호응의 여러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한 소비자의 유튜브 댓글 하나는 광고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댓글의 내용은 '왜 아이의 성장이나 육아에 관련된 내용에 엄마만 나오냐'는 불만이었다.

아픈 내용이었다.

더 민감하게 고민했어야 하는 부분이었다.

나 역시 전업주부 아내가 있는 남성으로서 육아에 대한 스트레오타입을 갖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아이에 대한 고민은 엄마의 몫으로 생각하며 엄마의 공감을 위해 엄마를 등장시키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후에 알게 된 것은 설령 육아에 대한 엄마의 관여가 더 큰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육아에 함께 하는 아빠가 나올 때 엄마들의 광고 호감도가 더 올라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다음 정관장의 유산균 제품 광고를 만들 때는 지난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늦둥이 막내를 두고 있는 나의 경험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다음 광고에는 아이의 유산균을 선택하고 고르는 일에 아빠의 역할을 더 많이 부여했다.


정관장 어린이 유산균 제픔의 한 장면




사극 광고를 만들거나 레트로 형식의 광고를 만들 때, 광고는 과거와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며 첨단 산업을 다룰 때는 미래와 조우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광고들은 현재를 담아내야 한다.

그런데 현대를 담아내는 광고의 지향점은 지금의 트렌드를 세심하게 담거나 혹은 반 발짝 정도 앞서야 할 때가 있다. 위에서 보여준 예시처럼 일반적 스트레오타입이, 일부 소비자 인식에 뒤처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대세가 되지는 않았으나 변화의 흔적들이 나타나는 부분은 그 흔적을 좀 더 선명하게 제시하는 역할도 필요하다.


펜타클이 새로 준비하는 여러 광고 중 하나는 3~40대의 유자녀 기혼 여성을 타겟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광고를 고민하면서 타겟 인사이트에 대해 토론했다. 이 토론에서 나는 아이를 둔 엄마들에 대한 전형성을 버리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보편적으로, 일하는 워킹맘들은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없다는 점에서 길티센스를 갖는다. 그렇다면 전업주부와 함께 있는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엄마에게 고마움을 느낄까? 그렇지 않다. 아이는 전업 주부 엄마의 보살핌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내 아내의 직업은 2개다. 일과의 3분의 2는 전업주부 3분의 1은 작가의 일을 한다.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와 중학교3학년인 두 아이들을 위한 업무의 분배다. 하지만 가사의 일이 많을 때, 작가의 일은 밤샘 야근 작업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전업주부의 일과 작가의 일 중 어떤 것을 더 멋지다고 생각할까? 개인적 뇌피셜은 아쉽게도 아이들에게 신경 쓰지 않는, 작가로서의 엄마를 더 멋지게 생각할 거라는 것이다.

육아는 중요하고 고귀한 업무다. 하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의 대상은 인정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 채워지지 않는 인정욕구는 업무의 의욕을 거세한다. 안타깝지만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한 주장처럼, 아가페적 사랑으로 포장되었지만 DNA가 시킨 일이 실은 전업주부의 삶을 지탱하는 것이다.


조심스럽지만 유자녀 기혼 여성의 타겟 인사이트에 대한 나의 결론은, 엄마로서의 삶보다 인정욕구를 채워 행복할 수 있는 다른 삶이 있다면 그 삶에 집중하는 것이 아이들의 육아에도 더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로서의 삶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극단적 메시지의 형태인 광고 카피로 만든다면 나는 '엄마를 버려라'라는 카피를 쓰고 싶다.

마음만 그렇다. 이런 생각이 새로운 광고에 담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광고에 새로움은 필수다. 소재도, 형식도, 음악도, 폰트도 새로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생각의 새로움일 때가 많다. 시대를 담아내는 정신이 그렇다. 시대정신은 시대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또 너무 앞서가지도 않아야 한다. 하지만 새로움을 위해선 아주 살짝 앞서가는 생각을 할 필요도 있다. 아주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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