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주로 광고하기 VS 광고대행사에서 광고하기 2

광고대행사에서 광고하기

by 김대영

광고주 실무자들 중에는 광고대행사 출신이 제법 많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업이 광고 담당자를 뽑을 때 광고 대행사 출신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광고대행사 출신의 광고주 실무자들은 크게 2가지의 광고주로 나뉜다.

광고대행사의 경험으로 을을 이해해 주는 광고주와, 해당 경험을 바탕으로 을을 통제하는 광고주.


최근 함께 하고 있는 기업의 광고주는 전자에 해당했다.

대기업 종대사의 제작팀 출신인 광고주는 자신이 몸 담았던 대행사의 장단점과 펜타클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며 우리의 장점을 인정해 주었다. 당연히 상대적 단점 또한 없지 않았을 테지만 광고대행사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파트너를 인정해 주려 노력하는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반대의 경우에는 대행사 시절, 광고주에게 당한 설움을 폭발시키기라도 하듯 더 악독한 갑질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 역시 왕왕 겪게 된다.


광고대행사 출신의 광고주는 흔하다. 광고대행사에서 광고주를 거쳐 다시 광고대행사로 온 케이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나처럼 광고주 경험만을 갖고 있다가 광고대행사로 이직한 경우는 흔치 않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도 나의 흔치 않은 경험과 생각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앞 글에서는 광고주 사이드에서 광고를 업으로 삼았던 경험을 바탕을 이야기했다.

광고대행사에서 광고를 한다는 것의 장단점을 이야기할 차례지만 아마도 광고주에서 광고하는 것과 비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광고는 광고주가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광고주 시절에는 이 말에 당연히 공감을 했다. 그럼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는 지금, 이 생각은 바뀌었을까? 아니 바뀌지 않았다. 광고는 광고주가 만든다.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는 어려움은 대부분 광고주로부터 기인한다. 이 어려움의 핵심은 광고를 만들어내는 비용이 광고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광고대행사는 광고주의 돈으로 광고의 주인을 대신해 광고를 만들어 준다. 광고뿐 아니라 많은 서비스 업들이 그렇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전문가에게 의뢰하며 비용을 지불한다. 의료서비스가 그렇고 변호서비스도 그렇다. 물론 전문성이 얼마의 특수적 배타성을 갖는가에 따라 전문가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진다. 광고업은 분명 창의적 측면에서 배타적 전문성이 있지만 의료업이나 변호업과 같은 전문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광고주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 서비스 의뢰 비용이 비싸다는 차이도 있다. 의료서비스나 변호서비스에 비해 광고대행 서비스는 적게는 수억에서 많게는 수십, 수백억이 들어간다. 서비스 비용을 많이 내는 것은 그만큼 더 큰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돈을 주고 전문성을 사는 다른 전문직에서는 볼 수 없는 어려움이 광고대행업에서 발생한다.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는 어려움의 가장 큰 원인은 광고제작을 의뢰한 주인이 있다는 지점이다. 그것도 큰돈을 준 주인이 있다는 것이다. 큰돈이 빌미가 되면 광고주와 광고대행사는 돈 앞에서 다른 생각을 한다. 광고주는 돈을 준 만큼의 서비스를 받고자 하며 마찬가지로 광고대행사는 돈의 크기에 비례하는 부가적 서비스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AE가 '아(A) 이(E)것도 제가 하나요?'의 약자 라거나 'AE는 따까리'라며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하고 광고대행사 탈출의 의미하는 '광탈'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해당 서비스의 비용이 적지 않다는 것은 광고가 전문 영역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갑질의 유혹을 만들어내는데도 용이하다는 것이다.

비용의 크기는 일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척도 뿐 아니라 마치 그 비용을 쓰는 자신이 그에 맞먹는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광고주 시절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디지털의 시대가 보편화되고 성과 측정이 쉬어지면서 광고의 효율적 측면을 고려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하지만 내가 광고주로 있던 십 수년 전에는 효과측정이나 효율성의 고민이 크지 않았다. 그래서 1년에도 수백억씩 TV광고를 집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 비용을 집행하는 광고실무자로서의 내가 마치 수백억 대 자산가인 것처럼 광고주로서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착각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선물을 받고 접대를 받는 일들이 아니었다 해도 마음 자세는 다르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나의 돈으로 이익을 내는 너희는 나의 업무적 성과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광고주가 여전히 있고 그로 인해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는 어려움이 있다. 우선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는 어려움부터 살펴보자.


1. 나의 시간을 주체적으로 컨트롤하기가 힘들다.

광고주의 일을 수행하는 단점은 광고주의 스케줄에 나의 스케줄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간 대행을 하고 있는 광고주가 예고도 없이 업무를 요청하면 짧은 시간 안에 수행해야 하는 일들이 비일 비재하다. 이런 일들로 인해 회사의 생활을 넘어선 개인의 생활에서도 시간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 광고주의 부당한 요구나 행동들을 감내해야 한다.

많은 케이스를 이야기하기엔 힘들지만 도입부에 서술된 광고서비스라는 업의 한계점들로 인해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여러 상황을 맞이할 때가 있다. 때로는 이러한 상황들이 감정의 상처를 유발하기도 하며 모욕감이나 자괴감에 빠지게 할 만큼 힘들 때도 있다.


3. 경쟁 비딩의 시스템이 삶을 고단하게 만든다.

한국에서 기업들은 경쟁 비딩을 통해 광고대행사를 선정한다. 보통은 1년 계약이다. 따라서 광고대행사는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한 달에 수 차례의 경쟁 비딩을 진행한다. 한 캠페인에 적게는 3~4개에서 많게는 10개 이상의 회사가 비딩이라는 전쟁을 치른다. 회사나 팀의 이익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다 보니 해당 기간의 준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이 투여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육체적, 정신적 고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승자독식의 방식이다 보니 승리의 기쁨을 얻는 회사보다 그렇지 않은 회사가 더 많다. 큰 비딩일수록 승리하지 못한 후유증도 클 수밖에 없다.


4. 워라밸을 보장할 수 없다.

시간의 주체성이 없다는 것, 밥 먹듯 경쟁 비딩에 참전해야 한다는 점들 때문에 야근이 많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고 주말을 반납해야 할 때도 있다. 회바회, 팀바팀이라고는 해도 거의 대부분의 광고대행사는 업무의 강도가 높은 편이다.



더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며 겪게 되는 어려움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이런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다시 광고주의 삶으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광고대행사의 삶을 선택할 것이다. 오래전 광고대행사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던 취준생 시절로 돌아가도 내 선택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럼 광고주로서 광고 업을 하는 것과 다른, 광고대행사에서의 삶이 더 나은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1. 상대적으로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사원에서 과장 즈음까지 대기업에서 일하던 시절, 나는 제법 좋은 평가를 받았고 또래의 동기들보다 높은 연봉을 받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기업의 평가 시스템은 정확히 일의 성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학연 같은 것들과 연결된 보이지 않는 라인들이 있고 정치적인 관계성들도 작용을 할 수밖에 없다. 광고대행사 역시 그러한 부분에 자유롭지 못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결과의 선명함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기획팀은 비딩의 승리, 승리 이후의 캠페인 운영 등을 통해 얻은 매출과 수익이라는 선명한 KPI를 바탕으로 능력을 평가받을 수 있다. 다양한 방식의 광고주 케어를 통해 연장 계약이나 수의 계약을 진행하는 것 또한 능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제작팀은 능력치를 가늠하는 부분이 좀 더 선명하다. 본인의 아이디어를 통해 비딩의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하거나 온에어를 통한 광고 집행 수익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광고대행사는 능력 이외의 것들로 인한 공정하지 못한 평가에서 조금은 자유롭다.


2. 일에 대한 인풋과 아웃풋이 명확하다.

기업에서 일을 할 때, 진행한 일의 성과를 확인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 마케팅 부서 역시 해마다의 KPI가 있지만 영업 부서나 사업부서와 다르게 정확한 수치를 만들어내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 해당 기업의 브랜드 선호도나 인지도의 상승이 마케팅의 효과인지를 증명하는 것도 힘든 일이며 그러한 수치의 상승을 대단한 성과로 인정해 주는 경우도 흔치 않다. 광고주 시절 통신사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광고를 만들었지만 해당 광고로 인해 가입자가 늘어났다는 것을 증명해 내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광고주와 광고대행사의 실무자가 똑같은 광고 캠페인을 진행해도 광고주가 얻은 성과를 측정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나 광고대행사는 정확한 성과가 있다. 정량적으로는 해당 캠페인을 통한 매출과 이익이며 정성적으로는 캠페인에 대한 광고주와 소비자의 반응이다. 광고제 수상은 덤으로 주어지는 꽤 쏠쏠한 성과가 되기도 한다.


3.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창의적 기쁨

광고는 광고주의 것이다. 하지만 그 광고의 전략과 크리에이티브는 온전히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광고주로 일하면서 광고대행사와 함께 만들어낸 캠페인들을 '나의 광고'라고 생각했다. 광고주로서 다양한 의사 결정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고대행사에서는 광고주 시절에 느끼지 못했던 '나의 광고'에 대한 본질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전략적 접근이나 아이디어가 온전히 나의 전략적 사고와 창의적 감각에서 나왔다는 자부심이다. 광고에 대한 이 본질적 자부심은 광고주로서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어쩌면 이러한 희열이 많은 어려움을 망각시키며 광고대행사에서 광고를 만들게 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4. 내부의 적이 상대적으로 적다.

기업에서 일할 때도 경쟁사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나의 회사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적들은 내부에 있었다. 기업의 상대 평가 시스템은 같은 팀원들을 적으로 만들고 다른 팀들도 경쟁 상대로 만든다. 광고대행사도 내부의 상대평가 시스템이 없지 않다. 때문에 내부의 경쟁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더 큰 외부에 적이 있다. 광고주를 적이라 표현하는 것에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으나 어쩔 수 없이 광고주라는 존재는 내부를 결속하게 만들어 주는 매개체가 된다. 광고대행사를 파트너가 아닌 을로 규정하는 광고주가 많을수록 오히려 내부는 서로를 공감하고 의지하게 만든다.

광고 캠페인 부문의 리더로서 동료들이 기대치 보다 더 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가끔 그들을 나의 생각에 맞춰 다그치고 싶은 유혹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아니어도 광고주의 요청들로 힘이 들 동료들을 생각하면 금세 그런 유혹은 사라진다. 일이 어렵고 힘들어도 내가 경험한 다른 회사에 비해 동료들이 서로를 의지하고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보면 다 같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한다.



2회에 걸쳐 광고대행사와 기업의 광고주로서 광고업을 하는 장, 단점을 이야기했다. 책 한 권으로 써도 모자를 이야기를 압축하다 보니 더 많은 이야기를 다루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혹여 광고를 좋아하는 후배 동료들이 광고업을 시작하고 회사를 선택할 때 도움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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