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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영 Oct 25. 2024

급진적 투명성의 가치를 파는 [에버레인]

새로운 사업을 준비할 때 패션, 의류 산업으로의 진출은 얼마나 성공 가능성이 있을까?

데이터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패션 사업에서의 성공확률을 높게 보지는 않을 듯하다.

누가 봐도 레드오션이며 새로운 혁신이 일어날 거 같지 않은 이 산업에서 성공적으로 진입해 역사를 써가고 있는 기업이 있다.  


2011년 사업을 시작한 에버레인이다.

창업 당시 에버레인(Everlane)은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스타트업 기업이었다. 에버레인은 유니클로나, 자라 같은 글로벌 브랜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작은 의류 회사였다. 하지만 창업 첫 해 30만 달러의 매출이 2023년 추정치 매출 2억 달러를 넘어서며 크게 성장했다.  이들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강자들이 포진한 견고한 시장의 금을 내며 존재감을 만들어냈다.


에버레인을 만든 이는 벤처 캐피털 분야에서 일하며 기술과 비즈니스를 접목한 다양한 스타트업과 일한 경험이 있던 마이클 프리먼(Michael Preysman)이다. 그는 창업 당시 패션 업계의 불투명한 가격 정책과 생산 과정을 개선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마이클 프리먼은 한 방송에 출연해 50$ 짜리 티셔츠의 원가가 7.5$ 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유통구조의 불투명성을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비자는 자신이 구매하는 제품의 가격을 정확히 알 권리가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에버레인은 의류를 파는 것이 아니라 급진적 투명성(Radical Transparency)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가치를 팔기로 했다. 이 새로운 가치는 대형 패션 회사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갖게 만들어 주었다.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가격을 투명하게 확인하라는 홈페이지의 메시지


원재료와 부품, 가공, 배송등을 거쳐 나오는 가격과 마진 가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에버레인


에버레인은 제품 페이지에 제품이 제작되는 데 드는 비용을 상세하게 공개했다.  기존에는 소비자가 궁금해하면서도 알 수 없었던 재료비, 인건비, 운송비, 세금, 심지어 마진 등의 정보를 공개했다. 따라서 소비자는 가격 구조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가격뿐 아니라 제품이 제작되는 공장의 위치, 작업 환경, 윤리적 기준 등도 투명하게 공개했다.


"Choose What You Pay" 캠페인

에버레인은 "Choose What You Pay" 캠페인이라는,투명성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독특한 마케팅을 진행했다. 이 캠페인은 소비자가 제품에 대해 직접 가격을 선택할 수 있게 하여, 가격 결정 과정에서 투명성을 강조하고 소비자와의 신뢰를 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캠페인을 통해 소비자들은 에버레인이 제시한 세 가지 가격 중 하나를 선택해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각 가격은 제품의 생산 비용과 에버레인의 마진을 기준으로 설정했다. 세 가지 가격 옵션과 이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다.


-최저 가격: 이 가격은 우리 제품을 제작하고 직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는 데 필요한 최소 비용입니다.

-중간 가격: 이 가격을 선택하면 우리에게 작은 이익이 발생하며, 이를 통해 더 많은 제품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최고 가격: 이 가격은 전통적인 소매업체의 마진과 비슷한 수준이며, 이는 우리가 더 나은 서비스와 제품 개발에 투자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만약 기업이 정한 가격만을 내던 소비자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격을 마주한다면 어떨까? 지금까지의 구매 경험과는 너무 새로워서 처음에는 낯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이러한 경험은 그들이 소비자로 하여금 필요 이상의 폭리를 취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게 될 것이다.

가격 투명성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소비자들은 에버레인이 윤리적이고 정직한 브랜드라는 인식을 강하게 가지게 될 것이 당연하다.

좋은 제품을 최소한의 가격으로 제공한다는 믿음은 지속적 구매로 이어지는 기반이 된다.

실제 "Choose What You Pay" 캠페인은 전통적인 가격 전략을 깨고, 투명성이라는 가치를 직접 체험하게 한 혁신적인 시도였고 윤리적 소비나 투명성에 관심이 높은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뿐만 아니라 에버레인은 원가가 내려가면 판매가를 다시 낮추었다. 125달러에 팔았던 캐시미어 스웨터의 원가가 하락하자 이를 반영해 100달러의 가격에 판매했다. “기업들은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재빨리 가격을 올리지만 원자재 가격이 떨어져도 기존 제품가를 내리지 않는다" 며 정직하지 못한 업계를 비판했다. 당연히 소비자는 이런 에버레인의 솔직함에 크게 호응했다.


에버레인은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DTC, Direct-to-Consumer)를 통해 높은 품질의 소재임에도 합리적 가격대에 구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에버레인의 스테디셀러인 캐시미어 크루넥 스웨터는 비슷한 품질의 다른 브랜드에 비해 월등하게 싼 가격으로 판매되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에버레인의 The Cashmere Crew 가격은 170달러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의 Lightweight cashmere and silk crew neck sweater. 가격은 1,545 달러


사실 패션 산업은 오랫동안 불투명성으로 악명 높았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입는 옷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높은 가격이 책정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 마이클 프레이저만이 설립한 에버레인은 '급진적 투명성(Radical Transparency)'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앞세워 패션 업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패션, 의류 산업 카테고리가 줄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에버레인은 다른 답을 가져온 것이다. 대부분의 의류회사들이 스타일, 품질, 가격의 차별성을 가치로 팔고자 할 때 에버레인은 투명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팔았다. 물론 모두가 투명성의 가치를 사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누군가는 새로운 스타일의 가치나 남과는 다른 나를 표현하는 스타일의 가치를 구입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 비슷한 소재와 기능성에도 불구하고 천차만별의 가격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소비자들이 존재할것이고 그들에게 에버레인의 급진적 투명성은 충분히살만한 가치가 될 것이다.

에버레인은 뻔한 가치만 있을 듯 보이는 전통 산업에도 새로운 가치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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