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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길고, 날씨가 좋지 않아도

by 홍차곰




20대의 나의 주제가를 뽑아보자면 페퍼톤스의 New Hippie Generation이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은 길고 날씨 참 좋구나”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 시절의 나를 표현하기에 그만한 구절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 시절에는 날이 좋아서 좋은 날이었고 날이 좋지 않으면 인생이 길어서 좋았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내일도 놀 수 있으니까.


몇 번의 작별을 마주하고 직장인 8년 차가 되면서 내게는 더 놀 수 있는 내일이 없으며, 좋지 않은 날, 멋지지 않은 날이 좋은 날보다 많아졌다. 하루를 망치는 일은 쉬웠고 거의 매일이 색다른 지옥이었다.

‘오늘은 멋진 날이어야 하는데’ ‘주말은 꼭 맛 좋은 것을 먹어야 하는데’ 등의 갖가지의 좋은 날을 만들려는 규칙들이 수많은 감옥을 만들어 나를 가두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나의 삶에 분명하고 확실하게 행복하게 만드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 마주하기 불쾌한 것이 더 많지 않은가. 혹시 나는 애써 불행해지는 방법을 찾아내고 있던 것은 아닐까, 말로는 작은 행복을 찾는다면서.


그리하여 나는 불행해지지 않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떠 작은 행복을 찾으면 눈누난나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인생을 누리는 타입의 인간이 아니니까. 다만 오늘의 나를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오늘이 꼭 완벽하게 멋지지 않아도 괜찮다 생각하려고 한다. 잘되진 않지만, 여전히 연습 중이지만.


그리고 정확한 행복의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만년필로 일기 쓰기, 고소한 라테, 낮에 마시는 술 한잔, 자연광 드는 곳에서 책 읽기, 개운한 필라테스 한 시간, 고양이 뒤통수 냄새 그리고 또 여러 가지. 세상에 아직 모르는 행복의 열쇠도 더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날씨가 좋지 않아도 괜찮다, 내일 또 새로운 기쁨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러면 비록 개같은 오늘을 보냈더라도 하루 더 살만해진다.


인생은 길고, (사실은 길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오늘의 날씨가 좋지 않아도, 나는 이렇게 감기를 이겨내고 있으며, 그냥 그저 그렇게 요만큼 만족하며 오늘도, 내일도 살아갈 것이다. 또 다른 행복의 열쇠를 찾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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