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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어가는 중입니다.

어느 우울증 환자의 회고 2

by 홍차곰



올해는 복숭아를 네 상자째 먹고 있다.

여름 정말 싫어하지만 복숭아를 먹을 수 있으니까 버틸 만 해. 하고 생각한다.

봄에는 미나리 주꾸미 샤부샤부를 먹었다. 주꾸미를 1킬로를 사 와서 해 먹었더니 일 년 동안 주꾸미 생각이 나지 않을 듯했다.

지난겨울에는 퇴근길에 붕어빵을 품고 집으로 갔다. 가을에는 뭐를 먹지, 심각하게 생각한다.

한때는 죽는 게 사는 것보다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이 우습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

왜 살아야 해

모두가 나를 미워해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세상이 나만 죽으라고 소리 지르는 것 같아

라고 생각하던 앓던 시간들이 있었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약을 먹으면 된다.

그러면 사랑하는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기쁜 것,

다른 생각나지 않게 쉴 틈 없이 맛있는 것을 먹고 웃고 떠들게 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것,

손잡고 시장에 가 주꾸미를 사주는 아빠와 지겹게 붕어빵을 나누어 먹어주는 호적 메이트가 있는 것,

제철 과일과 여러가지 와인을 사 먹을 수 있게 돈 벌 수 있는 곳이 있는 것,

늘 따뜻한 나의 고양이가 있는 것이 감사하다.

(자랑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을 이겨낼 내가 있다. 언제나 가장 큰, 정확한 위로는 나였다.


별 것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고 회사 가기 싫다면 눈떠서 고양이를 조금 더 쓰다듬는다. 퇴근하면 제철음식을 찾아 먹는다. 주말엔 운동을 하고 나를 위한 만찬을 차려먹는다. 가끔 맛있는 빵을 사러 낯선 동네를 여행하듯 가기도 하고 재미있는 드라마도 본다. 멋진 책도 얼마나 많은지!


어떻게, 왜, 그에 대답은 찾지 못했지만

(아마 계속 또 끝까지 못 찾겠지만)

벅차오르는 기쁨을 미루지 않으려 한다. 마음껏 즐기려 한다. 그래도 괜찮더라,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다.



행복해져요 우리, 우리는 잘 익어가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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