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잘 사는 이름으로부터

나의 혜덕씨께

by 홍차곰


혜덕씨,

그러니까 순자씨, 잘 지내시는지요.

저는 요 며칠 몸이 안 좋아 고생했습니다. 여름이면 한 번씩 앓고 지나니 이젠 그러려니 합니다. 어릴 적이었다면 당장에 손을 잡고 한의원에 갔겠지요?


아파서 입맛이 없을 때면 손수 밥알을 찧어 만들어 주셨던 인절미, 설탕 국수가 생각나곤 합니다. 떠도는 레시피를 아무리 따라해도 그 맛이 나진 않더라고요. 그게 다 사랑이었나 봅니다. 그 사랑을 먹고 컸노라, 그 사랑을 먹고살아있노라,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는 당신의 기일이었습니다. 좋아하시던 음식으로 올려드렸는데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맛 좋다는 빵도 아껴두었다가 올렸습니다. 맨 뒷줄에서 절을 하며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을 더 그리워하는 것을 알지만, 고작 삼십 년을 만난 나도 퍽이나 당신을 보고 싶어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밥을 풀 때면 꼭 두 번에 나누어 퍼요. 한 번만 주면 정이 없다던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요. 하늘이 무너질 걱정을 한다던데, 당신을 닮아 주변 사람들을 많이 사랑하는 것이겠지요. 고양이와 붙어 자는 날이면 어릴 적 같이 잠들었던 방의 차가운 유리창 향기가 생각이 납니다. 비가 오면 학교 앞으로 마중 나와 사주셨던 단팥이 든 찹쌀도넛과 흰 우유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분명 더 많은 기억이 있었을 텐데 하나둘 잊혀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1990년 6월, 세 번째 손녀로 나를 얻은 당신이 이름을 사러 가서는 지금 내 이름을 골라왔다 들었습니다. 발음이 예쁘지 않아 바꾸어 볼까도 생각했었지만 이름을 따라서 살게 되려고 개명은 조금 더 미루었습니다.


시집 잘 가는 이름 대신 내가 잘 사는 이름으로 골랐다던 당신 덕분에 저는 오늘도 잘 지냅니다. 당신의 자랑 중에 하나로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혜덕씨, 보고 싶어요, 언젠가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날 당신께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다행이었어요. 어차피 글로는 그리운 마음 다 못 담을 테니 이만 줄입니다. 부디 아프지 마시고 즐거이 지내세요.



keyword
이전 06화La vie est bel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