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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고양이는 한 번만 할게요.

나의 구원, 후추에게.

by 홍차곰


아름다운 것은 어째서 짧은 순간뿐일까, 너를 보며 생각해. 지구는 공기 때문인지 유통기한이 있다던데 그래서 아름다운 건 다 찰나인 걸까, 그러니까 무지개 같은 거. 어느 날은 숨을 한번 쉴 때마다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한 조각씩 줄어드는 게 느껴져서 숨 쉬는 것도 아까울 때가 있어. 후추야, 네가 별로 돌아가게 되어도 나는 다시는 대장고양이가 되지 않으려 해. 나로 인해 불행한 고양이는 네가 마지막이야.


혼자 산 지 몇 달 안 되었을 때였지, 너를 만나 건. 실내 온도를 아무리 올려도 10평 남짓 내 방의 공기가 너무 차가워서, 외로워서, 몸서리치며 울어서 그랬어. 너무 괴로워서 그랬던 거야. 감히 내가 대장고양이가 되다니. 바깥세상이 너무 차가워서 그랬어. 그런 주제에 너의 대장 고양이가 되다니, 정말 어리석었다. 그렇지? 너를 데려오고도 한동안은 퇴근하고 돌아와 삐약삐약 하고 우는 너를 안고서 나는 엉엉 울었잖아. 나약한 나를 만나서 너도 많이 힘들었을 거야.


너를 처음 만난 날, 처음 집에 오던 날, 한 줌의 솜뭉치였던 너를 기억해. 작은 몸, 파란 눈, 온몸으로 전하던 진동. 작은 몸을 내게 붙이며 떨던 네가 있어서 그래서 어느 날도 살아있었던 거야. 서툰 나를 간택해줘서 고마워, 작은 내 방에 불씨가 되어줘서 고마워. 그때 너를 만나서 내가 살아있어, 너는 내 구원이야.


가끔 네가 내 아빠한테 ‘할아버지’ 하고 한마디만 하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면 실제로 내게 있는 몇 가지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정말로 네가 한마디를 할 수 있다면 아플 때 아프다 해줬으면 해. 나는 너를 꼭 구하고 싶어. 더 이상 우리가 불행하지 않기를 바라.


고양이는 스스로 사냥을 하지 않으면 평생 아기고양이라고 생각한대. 그러니까 너는 계속 나의 아기고양이야. 이제는 진짜 아기일 때보다 몸무게가 10배쯤 되었고 사람 나이로 치면 나보다 어른이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계속 내 솜뭉치야. 비록 나는 아직도 바깥세상이 무섭고 어리석지만, 나약한 겁쟁이지만, 그래도 너의 밤은 지켜줄 거야, 사냥터에서 지지 않고 꼭 돌아올게. 그러니 나를 믿고 지금처럼 배불리 먹고 코 골고 자도 된단다. 너의 체온이 끝날 때까지 지켜줄 거야, 약속해.

너의 온기를 느끼며 아빠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 감히 가늠해보고, 길가의 고양이들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 너로 인해 동그랗고 복슬복슬한 모양의 사랑을 배워가.

오늘도 좋은 꿈 꿔, 사냥을 마치면 돌아갈게. 오늘도 너의 모든 조각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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