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교 10년 다닌 사람이 직장인 8년 차에 듣는 말에 대하여
“우리 팀의 꽃, ㅇㅇㅇ대리.”
라고 소개를 당했다.
무려 일주일도 안 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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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의 확률로 맨얼굴로, 50%의 확률로 바지에 티셔츠 쪼가리나 입고 다니는 주제에
어째서 나는 꽃으로 소개되었는가 생각해보자면, 내가 팀 유일의 ‘여’ 직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다.
여학교를 10년 다닌 셈이고, 인생의 1/3 정도를 여자만 있는 세상에 살았다.
여자만 있는 곳이 원더우먼에 나오는 별천지라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그 안에서 그냥 하나의 인간으로 배우며 자랐다. 나약하거나 보호당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 그냥 하나의 인간.
남성이 지배하는 회사에서 8년 차가 되었다. 이름을 대면 누구든 알만한 곳이지만, 이곳의 유리천장은 누구든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이어야만 알 수 있다. 남성들은 모르는 ‘여성의 세계’란 이런 것이다. 남성은 왜 화가 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는 것.
“여학교를 오래 다녀서 그래요”
ㅇㅇ대리는 여성스러운 면이 없지 하는 소리를 들으면 하는 말이다.
여학교가 이렇게 큰 교훈을 준 것을 다니는 중에는 몰랐다.
학교 안에서 나는 ‘여학생’이 아닌 학생으로 대우받았기 때문이었다. 어디서든 누울 자리 있으면 누워있어도 안전했고, 혼자 있는 강의실이 위협적이지 않았으며, 우리는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여자’가 아니라.
나는 혹시라도 내가 아이를 낳게 되어 딸을 얻게 된다면 되도록 오랜 기간 여학교에 다니게 하고 싶다. 안전한 환경 속에서 ‘인간’으로 먼저 대우받고 형성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평등치 못한 대우를 받았을 때 화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여’ 성이 아니라 그냥 인간 한 명이 먼저 되기를 바란다.
종종 기가 세다, 드세다는 평을 들었다. 얼마 전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말랑한지 알지도 못하면서”하고 생각하며 엉엉 울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다른 성이었으면 어땠을지 상상해 본다, 당차고 씩씩한 직원이라고 했겠지.
나는 꽃으로 소개되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꽃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꽃이 되기 싫다.
꽃이냐 나무냐 풀이냐 물으면 풀이고, 땅에 있는 무엇인가로 소개하자면 돌멩이라 할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드세고 기 세게 살아갈 것이다. 직장인 30년 차에도 그런 직원으로 ‘남’ 직원 옆에 동등하게 서 있으리라 다짐한다.
꽃으로 피었다 지지 아니하고 잡초처럼 쓰러져도 일어나 돌멩이처럼 덤덤히 버텨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