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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렙을 위한 바이블

beginner's luck

by 홍차곰


주말이 무척 여유로워져서 많은 취미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시작이 반이라길래 일단 시작하면 뭐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짜잔! 하고 멋진 내가 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30년이 넘게 웨딩피치로 PICK 되지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변신’은 못할 운명인가 보다.


나는 겁쟁이 중에서도 대장 겁쟁이이라 무언가를 시작하기 어려워한다. 잘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쪼렙이면서 만렙인 척하느라 그렇다. 돈 버는 일이야 조금은 만렙 인척 하는 뻔뻔함이 있어야 할지라도, 그 외의 일들은 쪼렙이라고 뭐 그리 큰일이 생긴다고 망설였는지 모르겠다.


이제부터는 장기전에 들어가기로 한다. 무엇인가 그럴듯하게 하고 싶다면 5년 동안은 ‘렙업 기간’으로 정한다. 그 기간 동안은 못해도 원망하지 않고 늘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는다. (물론 어렵지만.)

재미있어 보이는 일은 한 번쯤 해본다. 무엇이 앞으로 50년쯤 남은 내 삶의 행복을 열어주는 열쇠가 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리하여, 하다 보면 "는다", 운동의 ㅇ도 못 쓰던 내가 필라테스를 7년째 하면서 렙업 하여 이제 반가운 이를 만나러 갈 때 한달음에 지하철 계단을 오를 수 있다.

물에 빠진 적 있냐는 질문을 받을 만큼 물을 겁내던 내가 네 달에 걸쳐 자유형을 할 수 있게 됐다.

어릴 때 미술학원 못 다녀본 한을 풀려고 유튜브로 그림 그리기를 배우고 신춘문예는 못 나가봤지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직도 쪼렙이고 아마도 평생 만렙은 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괜찮다. 조만간 겁쟁이 대장에서 일반 겁쟁이 정도로는 렙업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 더 많이 웃을 수 있는 체력, 특별한 날 감동의 편지를 써줄 수 있는 글솜씨, 친구들에게 연말 엽서를 그려 선물할 수 있는 정도면 만족한다.


시작이 반이 아니라 시작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당장 쪼렙이라도 괜찮아요, 처음인데 뭐 어때요, 재미있었으면 됐잖아요. 세상 모든 쪼렙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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