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김현식 노래를 즐겨 들었다. 어쩌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거든 아버진 그런 엄마를 위해 볼륨을 올려주었다. 그녀가 혼자 있는 시간엔 어김없이 집안 곳곳을 울려 퍼지던 노래. 음정도 박자도 어색했지만 또박또박 따라 부르던 엄마의 흥얼거림이 지금도 귓가에 낯익다.
비가 오거든, 김현식의 노래가 떠오른다. 그러면 살포시 떠오르는 어린 날 기억의 잔상. 그리고 그곳엔 나와 그녀가 서있다.
어느 날부터 그녀의 잔기침이 부쩍 잦아졌다. 때때로 그녀는 도로 위 아스팔트 냄새 탓이라 했고, 길가에 무성한 잡초 냄새 때문이라고도 했다. 산책 중에는 심해진 그녀의 기침 때문에 대화가 끊어지기도 했다.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가벼이 치부하고 넘겼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때로 다시금 돌아갈 수만 있다면.
병원을 찾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때마다 가벼운 감기다, 천식이다, 알레르기 반응이다. 병명도 다양했다. 이유 없는 기침이었다. 받아온 약을 먹거든 그때뿐이었다. 또다시 그녀의 기침은 시작되었고, 그때마다 괜찮다 되뇌었다. 대화 마디마다 그녀의 기침이 장식하였고 그러다 가벼운 다툼이라도 생기거든 들리는 기침소리가 소음처럼 느껴졌다. 내 말이 듣기 싫어서 기침으로 피하는 걸까. 그러면 걱정이 되다가도 기분이 상해서 돌아서는 것이었다. 내 뒤를 따라 걸어오던 그녀의 기침 소리가 자꾸만 생각이 난다.
유난했던 그녀의 기침소리가 드디어 이상하게 느껴진 것은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서였다. 작년까지도 건강했던 엑스레이 사진은 어느 순간 달라져 있었고, 엄마의 폐에는 한참을 쓸어도 영원히 치울 수 없는 함박눈이 내려져 있었다.
받아들이기까지 얼마 큼의 시간을 필요로 했는지 모르겠다. 50대 중반, 젊다면 젊은 나이였다. 엄마는 애써 담담해했다. 차라리 누구나 알만한 병이었으면 덜 슬펐을까.
병을 진단받던 날이 생경하다. 병원 한 구석에서 두 손을 놓지 못하고 얼마간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눈이 퉁퉁부어서 뜨기가 어려울 정도로 펑펑 울었다. 왜 엄마였을까, 왜 하필 우리였을까. 약은 그저 남은 시간의 속도를 늦춰줄 뿐 아무런 힘이 없었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딸깍거리는 의사의 마우스 소리가 공허한 마음속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사무적인 표정의 의사는 산정특례 안내를 받으시라는 짤막한 몇 마디를 던져내었다. 5년마다 연장해야 하는 산정특례의 기간이 우리에겐 그저 남은 시간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한동안 엄마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독립 후에도 이따금씩 하던 우리의 산책시간은 얼마간 허용되지 않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산을 쓰고서라도 나섰던 산책을 더 이상 이어나갈 수 없게 되었고, 그러자 고통은 과속하여 이내 나를 덮쳐버리고 만다. 어쩌면 엄마에게 당신의 인생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나는 말없이 기다려줄 뿐이었고, 하루하루가 엄마와의 마지막 순간이 아니길 애써 기도하는 수 밖에는 딱히 방법 또한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내일의 시간이 두려웠던 적도 없는 것 같다.
다시 시작된 우리의 산책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되었다. 이전에 우리의 산책이 희망과 미래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지난 아쉬움의 흔적을 찾아 헤매거나 과거로 향하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산책은 여전히 힐링의 시간이었고, 우리는 계속해서 걸었다. 발이 아파 가끔씩 쉬어가는 벤치가 반가울 정도로 걷고 또 걸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무더위가 어느새 제 기세를 낮추더니, 가을의 상쾌함이 삽시간에 우리를 얼싸안았다. 달의 고도가 높아지고, 걸을 때 시끄럽게 들리던 풀벌레 소리가 잦아든 이 가을, 이보다 더 산책하기 좋은 날씨가 또 있을까.
걸을 때마다 엄마는 김현식 노래를 흥얼거렸다. 빗소리에 은은히 울려 퍼지는 그녀의 허밍소리가 나를 편안하게 한다. 어릴 적 듣던 엄마의 노랫소리가 생각나 슬픔과 기쁨의 높이가 제멋대로 넘실 거렸다. 불안한 내 눈빛을 읽었는지, 가다가 가만히 멈추어 나를 품에 안아준다. 언제든 따뜻했던 엄마의 체온은 나를 다시금 행복하게 해 주었다. 말없이 위로받는 그 순간, 엄마와 나는 그 순간을 위해 오늘도 산책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