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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돌보 Aug 28. 2023

남자친구를 소개합니다(2)

여름, 세찬 비 퍼붓고 그 줄기에 온몸이 푹 젖어 녹색의 풀비린내 가득 풍기던 그 여름.

이대로가 좋았다. 나란히 맞댄 우산이 한 번씩 부딪힐 때마다 눈이 마주쳤다. 가는 길, 무엇도 우릴 막을 것이 없었다. 한바탕 떠들며 걷던 그 시간들은 더 이상 흐르지 않을 영원의 순간일 것만 같았다.


그 여름, 나는 그를 만났다.




엄마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 한 것은 아니었다. 딸의 남자친구라 한다면 일단 색안경부터 쓰고 보는 버릇 때문이었을까. 그때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은 것 투성이었지만 그나마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엄마의 엄격한 잣대를. 사귄다고 결혼할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찬찬히 살펴보게 된다. 그에 대한 호구조사 따위가 1순위는 아니었다. 엄마에게는 무엇보다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주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는 매일같이 꽃을 사다 주었다. 태어나서 남자에게 꽃을 받아본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어쩌면 거기에 마음이 움직인 것은 내가 아니라 엄마였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여전히 산책 중이었고, 자연스레 나의 연애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 되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내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고 왔는지 궁금해했고, 가끔 의견이 맞지 않아 심술이 터지기도 했지만 우리는 금세 다시 친해지고는 했다. 미주알고주알 엄마에게 모든 것을 읊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만큼이나 그녀는 내 연애에 푹 빠져있었다. 아빠도 사주지 않던 안개꽃을 받던 날, 이제 막 손을 잡아본 소녀처럼 수줍어했다.   




매일 밤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꼬박 3년이었다. 그 정성과 사랑으로 우리는 앞으로를 함께 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지금껏 아버지에게 속여온 나와 그의 시간들을 알려야만 했다. 삼엄한 통금시간을 지켜왔지만, 그간 속여온 3년의 시간을 오픈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그것도 오픈과 동시에 결혼 발표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한 것도 같지만, 그때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는 내 연애에 너무나 부정적이었고, 틈만 나면 난 머리가 잘릴 위기에 놓이고는 했었다. 눈곱만큼도 봐주지 않을 아버지였다. 그때가 내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아버지는 지나치게 보수적이었고 갑갑한 아버지의 가치관 탓에 우리는 늘 부딪혀야만 했다. 이십 대 중반이 될 때까지 굳이 속이려 들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때까지 제대로 된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고 한다면 누구도 나를 동정해 줄 것이 분명했다.


그런 나를 엄마는 가여워했다. 중간중간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어 볼까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산책 중에 언제나 고민했지만, 어떤 것도 아버지를 설득할 논리가 없었다. 아버지 눈에는 스물대여섯의 내가 언제까지나 여섯 살, 물가에 내놓은 딸내미로 보일 뿐이었으니까.


떨리는 마음으로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토로하던 날이 떠오른다. 한참을 듣던 아버지는 담배를 태우러 가겠다며 밖으로 나가셨다. 그리고 그는 한참이 지나도록 들어오지 않으셨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그저 불같이 화낼 모습만 상상하고는 끝내 용기 내어 말할 수 없었다. 단단할 줄만 알았던 아버지는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날 그는 무너졌다.


들어오지 않는 그를 찾기 위해 엄마가 나섰다. 보도블록 턱 위에 털썩 앉은 누군가 서글피 흐느끼고 있었다. 아버지였다. 아버진 그랬다. 이렇게 일찍 보낼 줄 몰랐다 했다. 내가 얘기해주지 않았던 것에 속이 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직 딸과 헤어질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역정을 내고 반대를 할 법도 했지만, 아빠는 딸을 믿는다 했다. 연이어 태우는 담배 연기가 그날따라 진하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아버지의 마음은 여렸고, 가냘팠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아빠의 마음을.


스물여섯의 나는 다음 해 봄, 버진로드를 걸었다. 꿈에 그리던 웨딩드레스를 입고 아빠 손을 꼭 잡고 걸었다. 결혼식,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던 그 순간이 선명하다. 흐르는 눈물로 얼굴을 들 수 없던 아버지와 화장이 지워질까 눈물로 번지던 나의 얼굴. 더 잘해줄걸 미안하다. 신혼여행을 가던 설렘 가득한 비행기 안, 흐느끼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자꾸만 눈물이 났다. 뺨을 적시던 눈물을 닦느라 지저분해진 소매춤 위로 남편의 손이 얹어졌다. 잘 살자, 잘 살자며 다독이는 그의 품에 나를 맡기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륙을 했다.


다 알 줄 알았던 아버지를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그의 사랑을 모르고, 영원히 헤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빠에겐 제주행 출장을 가던 그날, 나의 첫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여섯 살의 나로 기억될 테니까.


유년시절, 우리 곁을 지켜주지 않던 아버지를 언제나 원망하고 원망을 거듭했다. 그러나 일순간 떠올랐다. 퇴근이 늦었던 아빠 손에는 언제나 우리 먹거리가 들려있었다. 그때마다 귀찮아했고, 아빠는 그런 우리에게 한술만 뜨고 자라며 자는 우리를 성가시게 깨우고는 했다. 그때 왜 나는 몰랐을까.


나는 너무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끝내 아버지의 모든 사랑을 깨닫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아버지가 오늘 참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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