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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돌보 Aug 25. 2023

엄마랑 하는 산책


우리는 산책을 자주 하였다. 언제부터였냐 한다면 아마도 내가 중학교 3학년 무렵이었지 않을까 싶다. 머리가 꽤 굵어지고 제 나름의 가치관이라는 게 생겨 사고라는 것을 수행할 수 있을 때부터 엄마의 말동무가 되어 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엄마는 오갈 곳 없는 사람이었다. 신혼 시절 거친 아빠로부터 못살겠다며 도망쳤을 때에도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집으로 다시 돌아와야만 했고, 그 후폭풍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거세었다. 고된 시집살이에도 하소연할 곳 하나 없어 속으로 삭이다 못해 터져 나온 울음이야말로 유일하게 그녀가 위로받던 시간이었다. 엄마에게 외할머니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였다. 열대여섯 즈음부터 집안의 가장노릇을 해야만 했던 그녀의 심정은 어땠을까. 서른 중반인 나도 어려운 일들을 엄마는 해내야만 했다. 아마도 친정이란 곳은 그녀에게 그저 도망치고 싶은 지옥 같은 곳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의 친할머니는 내게 추억이 없는 사람이다. 아니 지우고 싶은 사람. 한겨울 난방 없는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찬 바닥, 똘똘 말은 이불 하나로 버텨야 했던 기억도 없는 지난날의 추위. 엄마가 겪은 친할머니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일 년에 열두 번도 더 지내는 제사 준비로 먹지도 않을 굴전을 수십 장 부치게 했던 할머니의 이상한 고집은 엄마를 힘들게 했고 어린 나도 느낄 수 있는 고통의 일종이었다. 주말이면 엄마를 불러냈고, 어린 나와 동생은 영문도 모른 채 따라나서야만 했다. 매일 같이 새벽에 들어오는 아빠 그리고 할머니 집에서 직사게 하루 종일 집안일하는 엄마 때문에 고아처럼 지내야 했던 지난 유년시절의 기억. 연초냄새가 자욱했던 방 안, 아직도 내 코끝 진하게 남아있는 '하나로'의 연기가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냄새. 그런 사람이었다.




가끔 부부생활이 삐그덕 대거나, 위로받고 싶거든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는 한다. 신혼 때 가깝게 살던 시절에는 낮이고 저녁이고 시시때때로 찾아가기도 했다. 엄마는 나를 있는 그대로 품어줄 둥지 같은 곳이었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싸 안아 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겐 그런 엄마는 존재하지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차라리 연락이라도 없는 게 다행이었다. 할머니는 생각이 나거든 가끔씩 찾아와 엄마를 괴롭히고는 했다. 그러면 엄마는 받은 스트레스를 풀 곳 하나 없어 온전히 그녀 스스로 감내해야만 했다. 그때에 나는 너무 어렸고, 그래서 알 수 없었다 엄마의 아픔을.


그나마 내가 성숙해지고 나서부터는 이따금씩 하던 우리의 산책 중, 엄마의 쏟아지는 눈물을 받아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면 엄마는 나오는 눈물을 이내 소매춤으로 닦더니 나와 산책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했다. 그러면 나는 어렸지만, 큰 무엇이라도 된냥 으쓱해지는 것이었다.


집에서 공원까지는 20여분이 소요되었다. 여름이 되면 더욱 활발해지는 그 저녁의 활기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가로등이 공원 대부분을 수놓고, 그 아래 삼삼오오 사람들이 떼 지어 걸어 다닌다. 가끔 그 사이를 조깅하는 사람이 눈에 띄고는 한다. 깔깔 거리는 아이들의 쾌활한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나를 비켜 지나간다. 비가 온 뒤 호숫가 물 비린내가 코를 찔러도 내게는 엄마와의 산책시간만큼 소중한 것이 없었다.


여름이 되면, 공원은 더욱더 생기를 머금는다. 여기저기서 모여든 동네 사람들 입가에 번지는 웃음소리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 사이를 함께 걸으며, 한 주간의 있었던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산책 중 대개는 엄마의 힘들었던 옛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지만, 엄마는 언제나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친구 관계에 어려움이 많았던 내게, 엄마는 이 세상 전부였고 그런 엄마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내 모든 걸 나눈다는 것을 뜻했다.


엄마와 한참을 떠들다 보면 어느 순간 한 바퀴를 완주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 펼쳐진다. 늦는 아빠와 게임에 한참 푹 빠진 동생을 놔두고 엄마와 지극히 오붓한 시간을 가지는 것은 우리에겐 일종의 소박한 일탈이었고,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어찌나 짜릿한지 모르겠다. 산책의 순간, 그렇게 엄마와 나는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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