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봄에도 어김없이 꽃샘추위가 닥쳤다.
아들이 전부였던 세상에 딸로 태어난 것은 조금 특별한 일이었다. 양가에 딸하나였지만, 엄마의 출산을 반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태어날 때 양쪽 볼이 눌려져 있던 나를 본 할머니는 아기가 이상하다며 한참을 못마땅해했다. 힘주어 낳던 날, 아빠는 오지 못했다. 엄마는 혼자 이겨내야 했다. 터진 양수가 그녀의 다리를 흘러내릴 때, 홀로 택시를 타고 달렸다. 미리 싸놓은 출산가방은 단출했다. 그래도 큰 병원에서 낳아야겠다며 한참을 달려 도착했다. 스물다섯의 엄마는 그렇게 나와 만나게 되었다.
단칸방, 아빠는 매일을 늦었고 어쩌다 들어온 날에는 술이 떡이 되어 들어왔다. 그 밤, 괜한 시비라도 붙거든 엄마를 혼내준다며 그 좁은 방에서 언성을 높이고는 했다. 어쩌다 술에 취해 들어오거든, 나도 모르는 아저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들어와 술상을 차리라 했다. 말없이 엄마는 술상을 차렸고,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눈물로 들썩이던 엄마의 뒷모습만을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소녀가장이 되어 엄마와 어린 동생들을 챙겨야만 했다는 어느 소설의 뻔한 스토리의 주인공이 실은 엄마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사춘기 무렵이었던 것 같다. 어설피 흘려 들었던 엄마의 쓰린 속내가 딱히 와닿았던 것은 아니었다. 엄마의 마음만큼 나는 깊이 알지 못했고, 매일 같이 들어야 했던 부부싸움의 거센소리만이 지겨울 뿐이었다. 슬프게도, 그런 엄마 곁에는 나와 어린 동생만이 전부였다. 엄마는 흔한 친정엄마의 보살핌도 없이, 고된 시집살이를 해내야만 했다. 그러나 한 번도 아빠는 그런 엄마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는 달라지는 것 하나 없이 노상 늦었다. 늦은 밤 언제나 우리 곁을 지켜주는 것은 여전히 엄마의 품이었다.
엄마는 항상 곁에 있어 주었다. 유치원이 가기 싫다며 떼쓰는 날이면 엄마와 보냈던 한낮의 푸근한 잠이 떠오른다. 거실 붉은 카펫 위 하늘색 차렵이불을 덮고 잠들었던 한 겨울, 따뜻한 낮잠에서 일어나 엄마가 발라주는 생선을 흰쌀밥에 올려먹던 추억. 엄마는 생선 머리만 좋아하는 줄 알았다는 이야기야말로 어쩌면 내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전날 밤 울며 잠들어 퉁퉁 부은 엄마의 눈을 그때에 나는 보지 못했고, 어느 날 갑자기 닥친 할머니의 등쌀에 상다리 부러지게 한상차림을 내어야 했던 엄마의 굽은 등을 알지 못했다. 엄마도 사람이었는데, 정말로 엄마는 오뚝이처럼 언제나 일어섰다.
엄마는 언제나 희생했다. 그녀 자신을 위한 삶은 아니었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최선의 딸이 되어 주고 싶었다. 나이팅게일처럼 엄마의 아픔을 치료해 주는천사가 되어줄 순 없겠지만, 추운 겨울 목도리가 되어 줄 수 있다면. 엄마는 얼만큼 행복했을까. 엄마에게 실은 내가 전부였던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