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아온 돌보 Aug 29. 2023

마지막 여행

엄마는 숨 쉬는 것을 가장 힘들어했다. 

아무리 급해도 달릴 수 없었고, 언덕이 나오거든 거칠게 몰아 쉬었다. 어깨에 큰 배낭을 지고 다니는 여행객처럼 힘겨워했다. 


그런 와중에 우리의 산책은 언제나와 같았다. 가끔씩 친정을 들러 하룻밤씩 자고 오거든 어김없이 엄마와 밤산책에 나섰다. 그러면 엄마의 병을 모르던 어제처럼 우리는 금세 모든 걸 잊고 익숙한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 것이었다. 엄마의 숨소리가 예전 같지는 않다는 것 외에는 달리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다. 그냥 이대로 모든 것이 괜찮은 것만 같아 보였다. 




친정집 뒤편에는 자그마한 동산이 하나 있는데, 그 둘레를 삥 두르는 길에는 산책하는 사람들로 언제나 붐볐다. 그럴듯하고 대단히 멋진 길은 아니었지만, 걷기에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옛날에 살던 집 근처 산책길이 떠오르기도 했다. 호수를 따라 둘러진 가로등 대열은 어두운 밤 우리에게 나침반이 되어주었고, 그 때문인지 늦은 시간까지도 언제나 공원은 산책을 나선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는 했다. 나름의 운치가 그윽했던 곳, 그 밤 엄마와 나란히 걷던 때가 자꾸만 떠올랐다. 어쩌면 그런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숫가 옛 산책길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때에 우리에게 아무 일도 없던 사실이 그리워서. 


엄마는 자꾸만 오늘이 마지막일 것처럼 행동하고는 했다. 주변을 자꾸만 메만졌다. 약부작용으로 찾아온 시력저하도 한몫을 했다. 시신경이 손상되어 어느 순간 앞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은 겉으론 단단해 보였던 엄마를 순식간에 쓰러뜨리기에 다분히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날 무너진 것은 엄마의 건강뿐이 아니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엄마는 물 건너 살 팔자라 했다. 그러나 실제론 그녀는 태어난 이 땅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 흔한 해외여행조차도 그녀의 인생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녀와 언젠가 한번쯤은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에게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서둘러 티켓을 구했다. 비행기를 탈 만큼 먼 곳으로, 이왕이면 갈 수 있는 한 가장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면 모든 걸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엄마에게는 첫 여행이었고, 나에게는 엄마와의 첫 여행이었다. 


5박 7일 짧다면 짧은 시간 로마로 향했다. 아버지는 몹시도 반대했다. 성치 않은 몸으로 어딜 가냐며. 그러나 우린 어쩌면 그때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눈물은 청승맞도록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11월의 로마는 꽤나 추웠다. 

가져간 점퍼의 지퍼를 끝까지 채웠다. 두둑이 입은 후드티가 무색하게 팔꿈치가 시렸다. 매서운 추위는 아니었지만 추위로 온몸이 시큰거리는 날씨였다. 우리는 계속해서 걸었다. 지하철도, 택시도 마다하고 원 없이 걸었다. 끝없는 돌길을 밟으며 지나치는 예쁜 상점들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하였다. 걷는 내내 말이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든 잘 보내고 싶다는 그런 생각. 차를 타면 단숨에 갈 거리를 한 시간이 넘어 도착하기도 했다. 


그곳의 석양을 나는 잊지 못한다. 마지막인 걸 알면서도, 다음에 또 오자며 서로를 쳐다보며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했던 그 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슬프지만 행복했던 그날 저녁 우리의 다짐. 울음을 애써 집어삼키며 말했다. 꼭 나을 수 있어,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