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 베네딕트와 몬테크리스토

위로의 브런치

by 돌아온 돌보


슬픔이 아지랑이처럼 내 속에서 피어오르는 순간 나는 카페에 간다.




카페에 가면 스스로가 정갈해지고 단정 해지는 느낌이 든다. 어지러워 실타래처럼 꼬였던 생각도 정리가 되고,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어깨가 들썩이는 업템포 재즈의 비트도 마음에 들고, 원두 탄내가 은은히 풍기는 진한 커피 향도 취향저격이다.

카페에 가면 무념무상 할 수 있어 자주 간다. 작은 원형 테이블과 의자로 만들어 보는 나만의 공간, 그 안에서 풀어내는 짙은 상념들의 재정렬.

장소가 주는 즐거움이 이렇게 매력적인 공간이 또 있을까. 걱정이 사라지는 순간,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든다.




16년 4월,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다.

토니 베넷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가 절로 흥얼거려지는, 석양 지는 황금빛 금문교가 찬란히 빛나는 곳.

모든 것이 한 박자 느리게 느껴지는 느림의 미학이 깃든 곳.


그곳에는 유명한 카페 마마스가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낯선 골목을 배회하다 보니 허름한 간판이 하나 눈에 띈다.

대기가 꽤나 길었다.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우리 차례가 되었다. 배정받은 테이블에 앉고 유명한 몬테 크리스토와 에그 베네딕트를 각각 주문해본다.

옐로 톤의 따뜻한 인테리어와 우리를 따스하게 감싸안는 햇살이 빛나게 어우러지던 곳.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몬터레이에서 맛본 에그 베네딕트가 떠올라 입에 군침이 돌았다.

마침 주문한 음식이 우리 테이블에 올려졌다. 비주얼만으로도 눈을 못 뗄 만큼 세상 훌륭한 플레이트. 눈과 입이 행복했던 경험이었다.


비주얼 그대로 최고의 맛을 선사했던 몬테크리스토와 에그베네딕트


카페마마스 내부


그곳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단순히 여행의 설렘 그 자체만을 즐겼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자리한 그곳에서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어서 행복했을까.

커피 한잔의 여운이 감도는 그런 따뜻한 곳에서 맛본 최고의 브런치. 기분 좋은 음악 없이도 마음속으로 춰보는 왈츠. 머리부터 발끝까지 긴장이 풀어지고, 힘이 빠지면서 느껴지는 원두의 아로마 향기.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하나의 완벽한 경험이 되어 온몸을 감도는 여운으로 나를 도취시킨다.



경험한 하나의 황홀한 사건은 추억으로 자리 잡아, 복기할 때마다 세르토닌의 분비를 촉진시킨다.

나의 샌프란시스코가 그러했고, 힘이 들 때면 그날의 아로마를 떠올려본다.


'어떤' 장소가 우리에게 그렇다.

슬픔이 아지랑이처럼 나를 타고 감싸 안을 때, 복잡한 생각을 단정케 해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풀어주는 곳.

'곳'이 선사하는 최선의 위로, 그리고 그 위로로 해방되는 슬픔의 자유.

그래서 나는 카페를 간다.


무너진 나를 재정비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 작은 원형 테이블이 좁게 느껴지지 않고 큰 강이 되어 내 슬픔을 떠내려 보낼 수 있기에 그곳엘 간다.


누구나 자신만의 '곳'이 있다.

그곳에서는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벌거벗어도 부끄럽지가 않다.




복잡한 머릿속 작은 자유를 원한다면, 슬픔에 온 몸이 마비되어 제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없을 땐 자기만의 '곳'엘 가자.

그곳에서는 모든 걱정거리가 사라지는 마법이 존재한다. 그러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 우리 삶의 궤도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 집 앞 카페를 좀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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