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진의 세계

모로코에서

by 돌아온 돌보


우리가 모로코를 찾은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첫 아이를 낳고 남편은 내게 출산선물로 뭘 갖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주저 없이 여행이라고 대답했고, 우리는 그렇게 18년 9월 모로코로 떠났다.

마라케시 한 식당에서 먹은 타진




그렇게 떠났다 모로코를 향해.

모로코는 생소한 나라였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는 지정학적으로는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 남부와 근접한, 한때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나라. 그리고 유럽 같지만 북아프리카라는 사실.

우리는 스페인 마드리드를 경유하여 알헤시라스 항에서 배를 타고 모로코 탕헤르로 향했다. 항구에서의 입국심사는 새삼스러웠다. 떨리는 마음으로 입국허가 도장을 받고서 그 밤, 우리는 탕헤르 힐튼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였다.


작열하는 태양빛으로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땅의 열기를 온몸으로 맞이하며 걷고 또 걸었다. 뜨겁고 건조한 날씨가 누가 봐도 아프리카임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었다. 탕헤르에서의 짧은 바다 구경을 끝으로 서둘러 마라케시로 향했다.


마라케시 중앙시장의 여러 모습들


탕헤르에서 꼬박 8시간 야간열차를 타고 도착한 마라케시는 아프리카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드넓은 사막 한가운데 건설한 대제국의 면모는 '아 내가 드디어 모로코에 왔구나'하는 탄성이 나올만한 곳이 분명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타진'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되었다.


타진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먹는 음식으로써 찜이나 스튜와 같은 것이다. 주로 쟁반에 양고기나 닭고기를 당근이나 양파와 같은 각종 채소와 샤프란, 향신료를 넣고 수분 없이 끓이는 것이 특징이다.


타진은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 생선 등을 주재료로 향신료와 채소를 넣어 만든 모로코의 스튜이며, 이 요리에 사용되는 흙으로 빚은 모로코의 전통 그릇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타진은 아랍의 영향을 받은 식재료와 향신료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베르베르인들이 아랍의 침공을 받은 7세기 이후에 먹기 시작한 것으로 기원을 추정해볼 수 있다. 아프리카 북부에 거주하는 베르베르인들의 전통 그릇인 타진은 납작한 바닥과 원뿔 모양의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트립어드바이저 평점을 참고하여 방문한 마라케시 한 식당의 타진


향신료 향이 훅 풍겨오는 타진의 모습은 꽤나 낯설었다. 부글 끓어오르는 하얀 연기로 얼굴은 금세 수분기가 가득했다. 뜨거운 아지랑이를 타고 올라온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향신료의 향연. 튜머릭 향이 코를 찌르고 갖은 향신료가 층층이 쌓아 올린 탄탄한 향기가 허기진 나를 자극시켰다. 수저로 맛본 첫맛은 강렬했다. 멕시칸 요리의 혀가 아릴정도의 매콤한 맛도 아니었고, 이태리의 감칠맛 도는 토마토의 푸근한 맛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독특한 '맛있는 맛'이 분명했다. 그렇다, 아주 맛있는 맛. 찐득한 타진 양념을 서비스된 빵에 올려 먹자 마치 내가 베르베르인이라도 된 느낌이 들어서 즐거워졌다. 여행 가서 맛보고 온 요리 만들기가 취미인 나는 또 호기심이 동하였다. 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들어간 재료를 유심히 관찰하였다. 아 왠지 향신료만 구할 수 있다면 만들어 먹어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타진을 맛보고 난 뒤, 남편에게 당당하게 선언했다.


집에 가면 만들어 줄게, 타진


호언장담하는 날 지긋이 바라보던 남편은 코웃음을 쳤다. 이걸 어떻게 만들어 줄 수 있냐며. 하지만 나중에 돌아와서 들어본 얘기이지만, 내심 기대는 했다고 한다. 그동안 내가 헛으로 요리해준 건 아니었구나 싶었다.




호텔에서 받은 모로칸 요리책


레시피는 마라케시에 투숙한 호텔에서 받은 요리책을 참고했다. 재료는 구할 수 있는 최대한의 향신료를 준비해두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해서,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재료도 해외직구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구하지 못한 재료들은 과감하게 빼고 넣을 수 있는 건 최대한 넣어서 만들어보기로 했다. 사실 타진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깔처럼 생긴 냄비를 필요로 한다. 요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꼭 만들고 싶었기에 집에 있는 주물냄비로 대체하여 만들기로 작정하였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는다나, 뭐 어떤가. 온 정성을 다해 흉내 내면 그날의 맛있는 향기가 분명히 내게 와줄 것임을 확신하였다.


드디어 만들어 주기로 한 대망의 그날, 남편은 이른 퇴근을 하고 빠른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사실 하나도 어렵지 않은 건 거짓말이었다. 당당하게 외쳤지만, 제대로 만들어낼 자신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내가 그때 느낀 이국적인 모로코의 향기를 꼭 재연하리라.


재료는 다음과 같다.


(3인분 기준)

닭다리(손질된 것으로 구매) 1kg

레몬즙 조금

올리브 오일과 버터

양파와 당근 (기호껏)

다진 마늘 두 스푼

파슬리와 샤프란

생강 1/4스푼

튜머릭(강황가루) 조금

후추와 소금 조금

올리브와 야자 대추

그라운드 파프리카(파프리카 가루)


요리에 앞서 닭을 마리네이드 하도록 한다.(양념에 재운다)


양념 만들기

: 파슬리 기호껏, 레몬즙 약간, 그라운드 파프리카 적당량, 생강 1/2스푼, 마늘 1스푼, 샤프란 우린 물 약간, 후추와 소금 간 약간, 올리브 오일을 함께 넣고 잘 섞는다.


그리고 닭다리에 정성껏 양념을 버무리고 랩으로 싸 1시간 정도 재운다.


먼저 주물냄비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버터와 다진 마늘, 채 썰은 양파로 풍미를 돋운다. 둘둘 볶은 마늘과 양파에 양념된 닭다리를 넣고 함께 굽는다.

이때 소금과 후추 간을 살짝 해 넣는다.(항상 강조하지만 밑간이 중요하다, 밑간을 잘해놓으면 보다 탄탄한 요리가 완성된다)

닭다리가 어느 정도 익었으면 물을 자작하게 넣어주고, 강황가루를 뿌려준다. 큐브 썰기한 당근과 양파를 두둑이 넣고 약불에 1시간 정도 익혀준다.

(타진냄비가 아니기 때문에 무수분 요리가 쉽지 않다. 중간중간 냄비를 열어 양념이 타지 않도록 저어가며 졸이도록 한다.)


닭이 익었으면 레몬즙을 뿌리고 올리브와 대추야자를 넣어준다. 15분 정도 약불에 더 익혀준 다음 요리를 마친다.


요리를 마치자 그럴듯한 비주얼이 완성되었다.

완성된 치킨 타진 요리의 모습




요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어떤 게 있을까.

무엇보다 요리를 온전히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 간 의 시간이 소중해서가 아닐런지. 또한, 사랑하는 요리를 만끽하며 회상하는 여행의 추억도 빠질 수 없는 백미다. 어쭙잖은 타진 요리였지만,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더불어 함께 타진을 맛보며 5년 전 모로코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 들어 흐뭇해진 순간이었다.




서진이를 친정에 맡기고 단둘이 떠났던 초가을 우리의 모로코 여행.

아이를 키우며, 힘에 부치는 상황에도 그날의 모로코를 생각하며 오늘의 수고로움을 잊어보려 한다.


3년간의 어쩌면 긴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 가족에게 여행과 같은 일탈의 순간이 얼마큼이나 귀중해졌는지 모른다.

당분간은 가질 수 없는 우리 둘만의 여행. 그래서 더 아득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여행 사진을 감상하며 잠시나마 맡아본 다 모로코의 향기를. 그리고 아련한 추억에 잠겨 힘듦을 잊고 다시 한번 심기일전해보려고 한다.


지금 당장 현실에 고통스럽고 힘이 든다면, 지난 즐거웠던 여행에서 맛본 요리를 직접 해보며 향수에 젖어보는 건 어떨까.

요리가 주는 힘은 정말 위대하기에, 요리를 먹는 시간 동안 피어나는 가족 간의 사랑으로 오늘의 상처를 치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마라케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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