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을 기록하기로 했다

국밥에서 '지역소멸'과 '고령화'의 현실을 보다

by 투가든

지난해 가을, 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마이산’을 오를 때였다.

하산하고 뭘 먹을까 고민하다 국밥이 당겨서 맛집을 검색했다.

전국에서도 유명한 순대국밥 집이 근처에 있었다.

오후 3시 즈음이었다. ‘브레이크 타임’이 아니길 바라며 식당에 들어갔는데 역시.

“재료 준비 중이에요. 미안해요.”

실망감 안고 숙소가 있는 광주로 향했다.




‘국밥을 기록해야겠다!’


노을빛 물든 시야 사이에서 갑자기 떠오른 계획.

국밥집에서 ‘고령화’, ‘지역 소멸’의 현실을 마주했다.

주말인데 국밥 집 주변 시장 거리가 한산했다. 시대의 흐름으로 덧칠된 상가와 집들에서 ‘소멸’의 징후가 읽혔다.

국밥집에 들어설 때 어르신 종업원들이 늦은 점심을 하고 있었다. 국밥을 어렵게 지탱하는 고령화된 노동 현장을 만날 수 있었다.


국밥은 대표적인 ‘노동 집약형’ 음식이다.


보통 국밥집은 아침 6시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새벽 시간, 사람이 가게 불을 켜고 육수를 끓이고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재료를 다듬어야 손님을 받을 수 있다.

손님이 들어찬 이후에는 노동의 속도가 더 빨라지고 강도는 더 무거워진다.

육수를 쉼 없이 젓고 그릇에 담는 노동의 고단함. 팔팔 끓는 국물이 넘치는 뚝배기 그릇을 맨손으로 옮기는 위험천만함.

줄지 않고 쌓이는 설거지 거리에서 느껴지는 지겨움. 때론 술에 취해 난리를 피우는 손님을 상대하면서 솟구치는 감정의 피로감.

단기간에 끝나는 여정이 아니다.

저녁 시간까지 동일한 무게의 노동을 견뎌야 온전한 맛이 담긴 국밥을 내놓을 수 있고 가게 불을 끌 수 있다.

하루를 지나 일주일, 한 달, 몇 년 동안 한결같은 노동을 감내할 때 비로소 ‘노포’, ‘맛집’의 칭호를 얻을 수 있고, 그 국밥은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의 자격을 얻는다.


앞으로 누가 노동을 이어받고 감내하며 성취를 유지할까.


국밥은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초단기 업무 처리 일상과 완전히 반대의 길을 간다.

길고 느리며 은근하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모호한 음식이다.

국물이 어떤 맛을 낼지 모르기에 육수를 계속 젓는 인내를 발휘해야 한다. 높은 수준의 재료를 끊임없이 조합, 재해석하며 좀처럼 닿을 수 없는 최상의 맛을 향해 끈질기게 걸어가야 한다.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영역이 비교적 적은 음식이다. 맛집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노동력이 흔들림 없이, 장기적으로 모이고 쌓여야 한다.


어쩌면 국밥은 소멸의 수순으로 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소멸하도록 그냥 둬서는 안 된다.

역사와 정서와 문화가 오랜 시간 지층을 이룬 음식이 아닌가.

소멸하기 전에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층을 일일이 떼어 세세히 분석하긴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지층이 전체적으로 어떤 모양과 속성으로 구성돼 있는지는 조망해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맛도 좋으니까... 늦기 전에 더 많이 먹어두려고. 꿀꺽!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