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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나온 길의 무게보다 가벼움이 남았다

『나이 60, 비로소 보이는 것들』 네 번째 글

by 멘토K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무겁지 않은 날이 없었다.
직장에서는 보고서와 실적, 그리고 시간을 쪼개 대학원 학업의 무게가 늘 어깨를 짓눌렀다.


IMF로 인한 구조 조정, 아파트 융자금의 고금리로 인한 대출이자의 압박, 하루에도 몇 번씩 무게를 견뎌야 했고, 퇴근길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늘 지쳐 있었다.


컨설팅 시장 진입 초기의 사정은 훨씬 더 무거워졌다.

클라이언트의 오더를 받기 위한 고민으로 밤을 새야 했고, 그나마 매칭된 중소기업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클라이언트의 기대와 요구는 늘 한 발 앞서 있었다.


수십 장의 보고서를 만들어 내는 동안 ‘이게 내가 하고 싶던 일이었나’ 하는 질문을 마음속에 삼키며 살았다. 그 무게가 내 삶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예순이 되니 이상하게도, 무겁던 기억보다 가벼움이 더 또렷하다.

힘들었던 프로젝트보다 회의가 끝난 뒤 동료와 웃으며 나눈 짧은 농담이 떠오르고, 쌓인 보고서보다 생맥주 한 잔 나누며 위로받던 순간이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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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웠던 경쟁보다 “고생 많았다”는 말 한마디가 마음에 남아 있다.

결국 무게로 기억되는 것은 사라지고, 마음을 가볍게 해주던 장면만 오래 남는 것이다.


살아온 길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도, 바로 이 가벼움 덕분이다.
아무리 무거운 짐도 시간이 지나면 내려놓을 수 있었고, 남은 것은 웃음과 사람, 그리고 잠시 스쳐간 따뜻한 순간들이다.


AI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으며 또다시 무게가 얹히는 듯했지만, 이젠 다르게 받아들인다.

리서치와 보고서 작성에 AI의 도움을 받고, 심층적인 분석을 대신하면서도 내 삶에서 사라지지 않는 건 결국 ‘사람’과 ‘마음’이라는 걸 안다.


덕분에 이제는 효율만큼이나 여백과 쉼에도 새로운 아이디어와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시간을 쓸 수 있다. 이 또한 무게를 덜어내고 얻은 가벼움일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무게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 또한 그동안의 무게감에 비하면 가벼우리라...


예순이 되니 알겠다.

인생의 길 위에 쌓였던 무게는 결국 시간이 씻어 내리고, 남는 것은 마음을 가볍게 하는 조각들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맞는다.

돌아보니 무겁던 기억보다 가벼운 웃음이 더 오래 남는다.


결국 인생은 그 무게보다도, 그 무게를 견디며 얻은 가벼움으로 완성되는 게 아닐까.


- 멘토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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