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60, 비로소 보이는 것들』 다섯번째 글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버렸다.
직장도 버리고, 필요 없는 물건도 버리고, 한때는 내 전부 같던 습관들도 하나둘 내려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것들은 버리지 못하고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몇 가지가 지금의 나를 지탱해 주고 있음을 느낀다.
내 사무실 책장 한쪽에는 여전히 오래된 보고서 책자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컨설턴트로 살아온 지난 25년 동안 수많은 클라이언트와 마주하며 밤을 새워 만든 결과물들이다.
이제는 누구도 펼쳐보지 않을, 누군가에겐 단순한 종이뭉치일 뿐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달랐다.
그 보고서들 속에는 수많은 고민과 책임, 그리고 그 시간을 버텨낸 나의 흔적이 담겨 있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그때의 회의실 공기, 클라이언트의 표정, 그리고 나 자신이 흘렸던 땀이 묻어난다.
그래서 도무지 버릴 수가 없다.
버리지 못한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배우고 기록하는 습관’도 그렇다.
매번 새로운 산업, 새로운 시장, 낯선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공부하고 정리하며 내 방식대로 해석해야 했다.
그것이 결국 보고서로 쌓였고, 시간이 지나 나를 성장시킨 자산이 되었다.
그 습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만 이제는 클라이언트를 위한 답보다는, 나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부분들이 더 얹혀진 것들이 달라진 것들이다.
버리지 못한 또 하나는 ‘글을 쓰는 일’이다.
젊을 때는 보고서가 일의 전부였고, 글은 늘 무겁고 피곤한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글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쓰는 순간만큼은 나를 정리하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
글은 결국 버리지 못해 지켜온 것이 되었고, 이제는 내 삶의 쉼표가 되어 준다.
반대로 버려낸 것도 많다.
젊은 날의 과도한 욕심,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강박, 완벽해야 한다는 집착. 그 무게들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삶이 가벼워졌다.
남은 것과 버린 것이 균형을 이루며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예순이 되고 보니, 무조건 지켜야 하거나 버려야 할 것을 애써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겠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버려지고, 또 어떤 것은 끝까지 내 곁에 남는다.
책장 가득한 보고서 책자들처럼 말이다.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버리지 못한 것들’을 안고 살아온 게 아니라, 그 ‘지켜온 것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책장을 바라본다.
수많은 보고서들이 나를 짓누르기보다는, 이제는 나를 지켜준 흔적처럼 느껴진다.
“버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결국 나를 버티게 한 것이었구나.”
- 멘토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