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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소한 것도 연락하는 임차·임대인, 어떻게.

『知彼者 心安也』 두번째 글

by 멘토K


임대차 관계에서 종종 듣는 하소연이 있다.


임차인이 전구 하나 나갔다고 밤늦게 전화를 합니다.”

“임대인이 하루가 멀다 하고 가게 상황을 묻습니다.”


겉으로는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작은 접촉이 쌓이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결국 관계의 균열로 이어진다.


임대인과 임차인은 본질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힌 사이이기에, 자칫하면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


문제는 ‘사소한 일’이 아니라, 그 사소한 일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에 있다.


나는 한 번은 전통시장에서 점포 진단을 하며 이런 일을 겪었다.


임차인은 장사가 잘 안 되니 하루하루가 불안했고, 그 불안은 임대인에게 자꾸 전가됐다.


간판이 오래돼 교체해야 한다,

수도가 잘 안 나온다, 고객이 적다, 심지어 날씨 이야기를 하며 “이런 날엔 장사가 안 되는데 어떻게 하죠?”라며 임대인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었다.


임대인은 처음엔 성실히 응대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짜증이 쌓여 결국 이렇게 토로했다.


“제가 세 주려고 했지, 인생 상담을 하려고 한 건 아니잖아요.”


반대로 임대인이 불안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점포가 제때 임대료를 못 낼까 싶어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해 매출은 어떤지, 손님은 몇 명이나 오는지 캐묻는 것이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감시받는 느낌이 드니 불쾌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주택 임대차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월세로 사는 세입자가 전등이나 보일러 문제, 수도가 안 나오는 작은 고장에도 곧바로 임대인에게 전화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법적으로는 소모품 교체나 일상적인 수선은 임차인의 책임인데도, ‘집을 빌렸으니 집 관련 모든 건 임대인이 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락을 이어간다.


반대로 어떤 임대인은 집을 맡겨 놓고도 세세한 부분까지 개입한다.


세입자가 방 벽지에 못을 하나 박았다며 항의하거나, 주차 문제로 수시로 간섭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세입자는 집이 편안한 공간이어야 하는데도, 늘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때 중요한 건, 이 빈번한 접촉 뒤에 숨어 있는 심리적 욕구를 읽는 것이다.


임차인은 불안을 덜고 싶고, 임대인은 안심을 얻고 싶은 것이다.


겉으로는 전구나 수도꼭지 이야기를 하지만, 속마음은 “내 상황을 알아주고, 내 불안을 줄여달라”는 신호일 때가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경계 설정이 필요하다.

임대인이라면, “시설 보수는 이런 범위까지 제가 책임지고, 그 이상은 임차인 책임”이라고 명확히 선을 그어야 한다.


임차인이라면, “일상적인 고장은 제가 책임지고, 큰 시설 문제는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경계가 없으면 작은 일이 큰 갈등으로 번진다.


둘째, 소통의 루틴화가 필요하다.

필요할 때마다 즉흥적으로 연락하는 것보다, 정기적인 소통 창구를 마련하는 것이 훨씬 건강하다.


예를 들어 한 달에 한 번 점검일을 정하거나, 카톡으로 모아 연락하기로 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한 상가에서 ‘월 1회 점검회의’를 제안해 갈등을 줄인 사례를 본 적이 있다.


주택 임대차에서도, 임차인이 작은 문제들을 모아 한 번에 정리해 전달하면 훨씬 효율적이다.


셋째, 심리적 욕구를 인정해 주는 태도가 중요하다.

임차인이 자꾸 전화한다면, 단순히 귀찮아하기보다 “살면서 불편하실 텐데 걱정 많으시겠네요”라는 공감 한마디가 먼저다.


임대인이 잦은 질문을 한다면, “걱정이 많으신 것 같네요.


생활에 큰 문제는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라는 태도가 필요하다.


공감은 불필요한 접촉을 줄여주는 윤활유다.


물론, 모든 관계가 이렇게 매끄럽게 풀리지는 않는다.


때로는 아무리 선을 그어도 상대가 계속 넘나들기도 한다.


이런 경우 결국 선택은 내 몫이다.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인지, 아니면 과감히 계약을 정리해야 할 문제인지 판단해야 한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사실이다.


사람은 불안을 외부로 투사하는 존재다. 임차인은 장사의 불안을, 주택 세입자는 생활의 불안을, 임대인은 수익의 불안을 상대에게 떠넘긴다.


그 불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경계와 소통 방식을 지혜롭게 설계하는 것. 그것이 임대차 관계를 오래, 편안하게 이어가는 비결이다.


결국 사소한 연락이 쌓여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상대의 행동 뒤에 있는 심리를 먼저 본다. 불필요한 감정을 소비하지 않고, 필요한 제도와 소통 방식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를 알수록 내 마음이 편해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잊지 않는다.


知彼者 心安也.”

임차인과 임대인,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의 불안을 이해하고, 나의 경계를 지켜내는 것. 그 균형이 바로 관계를 지혜롭게 이어가는 길이다.


- 멘토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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