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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지하철교통망과 고객 유입의 상관관계

『지하도상점가, 변신의 조건』 열 다섯번째 글

by 멘토K


도시에서 지하도상가는 언제나 교통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 시작부터가 지하철과 차량 중심 교통망의 부산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지하철교통망과 지하도상가의 관계는 단순한 ‘환승 동선’이 아니라 상권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으로 변했다.


고객 유입은 여전히 지하철과 연결돼 있지만, 그 방식과 결과는 과거와 크게 다르다.


첫째, 지하철은 여전히 거대한 유동 인구의 통로다.

서울만 보더라도 하루 평균 지하철 이용객은 700만 명을 넘는다.


강남역, 홍대입구역, 잠실역처럼 1일 승하차 인원이 10만 명이 넘는 주요 거점은 자연스럽게 유동 인구의 중심지가 된다.


이 거대한 인구 흐름은 지하도상가의 생존 기반이 되어왔다.


실제로 강남역 지하도상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발걸음이 오가는 곳’으로 불리며, 한때 임대료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둘째, 유동 인구가 곧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이 드러났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모두 지하도상가에서 지갑을 열지는 않는다.


출퇴근객은 목적지로 향하는 데 급급하고, 환승객은 시간을 절약하려 한다.


단순히 ‘사람이 많다’는 사실만으로는 매출이 보장되지 않는다.


유동 인구를 소비 인구로 전환할 수 있는 장치, 즉 머무르고 싶게 만드는 요인이 필요하다.


셋째, 지하철 교통망의 확장은 지하도상가 간의 경쟁을 심화시켰다.

1980~90년대에는 특정 거점역 지하도상가만이 유일한 쇼핑 공간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주요 환승역마다 지하상가가 들어서 있고, 복합몰까지 경쟁에 뛰어들었다.


소비자는 더 이상 특정 지하도상가에 충성하지 않는다.


교통망이 확충되면서 선택지가 늘어났고, 자연스레 경쟁력 없는 상가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넷째, 지하철 출입구와의 연결성이 매출을 좌우한다.

상권 분석을 하다 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한다.


동일한 지하도상가 내에서도 출입구와 가까운 점포는 매출이 높고, 깊숙이 들어갈수록 매출이 급격히 줄어든다.


소비자는 이동 동선에서 벗어나길 원치 않는다. 교통망과 연결된 지점에 위치한 점포일수록 고객 유입이 많다는 것은 지하도상가의 구조적 특징이다.


다섯째, 지상 상권과의 연계성이다.

과거에는 교통망이 곧 상권의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지상 공간이 쾌적하게 개선되면서 지상 상권과의 경쟁이 심화됐다.


예를 들어 명동 지하도상가는 한때 외국인 관광객의 쇼핑 명소였지만, 최근에는 지상 카페거리와 로컬 브랜드 숍에 밀려 매력이 크게 줄었다.


지하철과 연결돼 있다는 이점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지상과의 경쟁을 이길 수 없다.


여섯째, 도시 교통 구조 변화의 영향이다.

최근 서울시는 ‘보행자 중심 도시’를 지향하며 횡단보도와 지상 보행 공간을 확충하고 있다.


그 결과, 예전처럼 지하도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상황이 줄어들었다.


교통망의 변화가 곧 지하도상가의 고객 유입 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는 것이다.


실제 사례를 보자.

영등포역 지하도상가는 하루 수십만 명의 유동 인구가 지나가는 요지다.


그러나 상인들은 매출 부진을 호소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대부분의 고객이 지하도를 ‘통과’할 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센트럴시티(고속버스터미널역)는 교통망과 복합몰이 결합되어 쇼핑, 외식, 문화가 함께 제공되면서 고객이 발길을 멈춘다.


두 공간의 차이는 교통망 자체가 아니라, 그 위에 얹힌 경험과 콘텐츠다.


결국 지하철교통망은 지하도상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기반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유동 인구를 고객으로 바꾸는 힘은 머무르게 하는 공간, 경험, 콘텐츠에서 나온다.


교통망은 기본 조건일 뿐, 지하도상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교통망+경험’이라는 공식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지하철은 여전히 도시의 혈관이다.

그러나 그 혈관을 타고 흐르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을 수 없다면, 지하도상가는 단순한 통로로 남을 것이다.


상권의 미래는 교통망이 아니라, 교통망을 넘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힘에 달려 있다.


- 멘토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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