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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도심의 확장과 핫플레이스의 경험을 찾는 세대

『지하도상점가, 변신의 조건』 열 여섯번째 글

by 멘토K

도시는 끊임없이 팽창한다.

과거엔 도심 한복판에만 사람이 모였다면, 이제는 교외와 지역 곳곳이 새로운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핫플레이스’다.


핫플레이스는 단순한 유행 공간을 넘어, 세대의 감각과 도시의 흐름을 반영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흐름 속에서 지하도상가는 철저히 뒤처지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도심 확장은 소비자의 동선을 바꿨다.

예전에는 명동, 종로, 강남 같은 중심 상권에 사람이 몰렸다.

하지만 지금은 성수동, 연남동, 망원동, 한남동 등 도심 주변부가 새롭게 주목받는다.

산업시설이었던 공간이 카페, 갤러리, 편집숍으로 바뀌면서 젊은 층을 흡수하고 있다.

도시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확산되며, 소비자들은 더 넓은 생활권 안에서 새로운 경험을 찾아 움직인다.

이런 변화는 곧 지하도상가의 ‘필수 동선’ 지위를 약화시켰다.

더 이상 사람들이 굳이 지하도로 내려가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둘째, 핫플레이스는 경험을 판다.

성수동을 예로 들어보자.

과거에는 단순한 공업지대였지만, 지금은 MZ세대의 놀이터이자 문화 소비의 거점이 됐다.

카페 한 잔을 마시더라도 공간 전체가 포토존이 되고, 브랜드 팝업스토어는 한정판 굿즈와 전시를 결합해 줄을 서서 들어간다.

소비자는 물건보다 ‘나만의 경험’을 구매한다.

반면 지하도상가는 여전히 점포 진열에 머물러, 공간 경험을 제공하지 못한다.

젊은 세대가 외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셋째, SNS와 공유 문화의 영향이다.

요즘 세대는 소비를 기록하고, 그 기록을 공유한다.

“어디서 먹었는지”, “어떤 공간이었는지”가 곧 콘텐츠가 된다.

그래서 핫플레이스는 SNS를 통해 확산된다.

하지만 지하도상가는 공유할 만한 이야기를 만들지 못한다.

어둡고 답답한 공간은 사진으로도, 경험으로도 매력이 없다. 이 차이는 곧 소비자의 선택을 갈라놓는다.


넷째, 보행환경과 도시 디자인의 변화다.

최근 도시계획은 차량 중심에서 보행자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동대문 일대만 봐도 과거엔 차량 소통을 위해 지하도와 육교를 통해야 했지만, 지금은 지상 보행로가 깔끔히 정비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거리로 나선다.

깨끗하고 안전하며 쾌적한 지상 공간은 곧 소비의 장이 된다.

반대로 지하도상가는 단절된 공간으로 남아, 도시 변화의 수혜를 받지 못하고 있다.


다섯째, 세대의 감수성과 맞지 않는 정체성이다.

MZ세대는 ‘재미있다’, ‘새롭다’, ‘남과 다르다’는 경험에 열광한다.

하지만 지하도상가는 ‘옛날 엄마들이 다니던 곳’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경험을 찾는 세대에게 지하도상가는 과거의 흔적일 뿐이다.

변화된 감수성과 맞지 않으니, 그들의 소비 동선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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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례를 보자.

서울 성수동은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낡은 공장과 창고가 늘어선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아티스트와 스타트업이 들어오고, 로컬 브랜드와 카페가 입주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금은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고, 해외 관광객까지 몰린다.

반면 불과 몇 블록 떨어진 지하도상가는 여전히 낡은 조명과 텅 빈 점포가 반복된다.

같은 지역 안에서도 ‘공간 경험’의 차이가 이렇게 극명하게 나타난다.


핫플레이스는 결코 우연히 생기지 않는다.

세대가 원하는 경험, 도시가 제공하는 환경, 브랜드가 만든 콘텐츠가 결합될 때 비로소 탄생한다.

지하도상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흐름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단순히 ‘사람이 지나다니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 경험을 위해 찾는 공간으로 변해야 한다.


도심 확장과 핫플레이스의 부상은 지하도상가의 위기를 보여주는 동시에, 기회도 제시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더 이상 ‘저렴한 쇼핑’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경험이고, 그 경험이 곧 공간의 가치가 된다.


지하도상가가 과거의 유산으로 남을지, 미래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지는 이 변화를 얼마나 빨리 읽고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 멘토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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