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彼者 心安也』 열 네번째 글
모든 게 순조로워 보이던 계약이 마지막 단계에서 틀어질 때가 있다.
회의도 잘 마쳤고, 견적도 맞춰줬고, 심지어 계약서 초안까지 검토가 끝났는데 갑자기 상대방이 말을 바꾼다.
“조금 더 생각해보자” 혹은 “조건을 한 번 더 조정했으면 하는데요.”
이럴 때 우리는 흔히 ‘배신감’을 느낀다.
하지만 조금만 냉정히 들여다보면, 그 순간의 돌변은 감정이 아니라 심리의 작용이다.
한 마케팅 대행사의 실제 사례다.
한 대기업 계열사와 광고 계약을 거의 마무리 지은 상황이었다.
프레젠테이션도 통과했고, 내부 승인도 끝난 상태.
그런데 계약서 날인을 앞두고 담당 부장이 말했다.
“본사에서 다시 검토하래요. 예산을 조금 조정해야 해서요.”
결국 처음 제시한 금액보다 20%가 깎였다.
대표는 화가 났지만, 이미 투자한 시간과 노력을 생각해 수락했다.
그런데 며칠 뒤, 그 회사는 아무 말 없이 경쟁사와 계약했다.
이 사건은 업계에서 흔히 말하는 ‘막판 심리전’의 전형적인 사례다.
거래처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건 단순한 변덕이 아니다.
계약 직전일수록 사람의 ‘본심’이 드러난다.
계약이 곧 관계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즉, ‘서명’ 앞에서는 누구나 계산이 복잡해진다.
“이게 정말 맞는 결정일까?” “혹시 다른 대안이 있지 않을까?” — 불안이 이성을 흔든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결정 불안(decision anxiety)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큰 결정을 내리기 전, 반드시 한 번쯤 ‘확신의 검증’을 거친다.
특히 금전적 거래에서는 더 그렇다.
상대가 갑자기 말을 바꾸는 건, 당신을 시험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불안을 달래는 행동일 수 있다.
“정말 이 조건이 최선인가?”라는 의심은, 상대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많은 영업자나 협상가는 실수를 한다.
상대의 ‘불안’을 ‘배신’으로 받아들인다.
“이제 와서 말을 바꾸다니, 신뢰를 잃었다”고 분노하며 관계를 끊어버린다.
하지만 현명한 협상가는 그 순간을 ‘신뢰를 다시 쌓을 마지막 기회’로 본다.
한 B2B 영업 컨설턴트는 이렇게 말했다.
“계약 직전에 변심하는 고객은 오히려 진짜 고객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 불안을 이겨내고 계약까지 가면, 이후엔 잘 흔들리지 않거든요.”
그는 계약 전 단계에서 꼭 ‘심리적 안전장치’를 만든다.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한다.
“혹시라도 아직 확신이 서지 않으시면, 제가 도와드릴 부분을 같이 정리해볼까요?”
이 말은 ‘압박’이 아니라 ‘이해’로 들린다.
상대는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고, 오히려 마음이 열린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거래처의 돌변이 항상 악의적인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가끔은 내부 의사결정 구조의 복잡함이 원인이다.
담당자는 하고 싶지만, 윗선의 ‘리스크 회피 본능’이 막는다.
“괜히 계약했다가 문제 생기면 내 책임이 되니까.”
이때 중요한 건 ‘논리적 설득’보다 ‘정서적 신뢰’다.
“문제가 생겨도 제가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이 한마디가 어떤 조항보다 강력한 신뢰를 만든다.
반대로, 정말 주의해야 할 돌변 유형도 있다.
첫째, 계속 조건을 바꾸는 유형
이들은 협상력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거래를 질질 끈다.
‘막판 딜’을 통해 우위를 점하려는 사람들이다.
둘째, “결정권자가 바뀌었다”고 말하는 유형
이는 책임 회피형이다. 보통 내부 의사결정의 문제라기보다, 이미 마음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는 신호다.
셋째, 과도한 감정 표현형
“이번에 정말 기대했는데요…” “이건 실망이에요.” 이런 말로 죄책감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협상 전략이다.
결국, 계약 직전의 돌변은 신뢰의 시험대다.
그 순간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관계는 깨지고, 이해로 대응하면 관계는 단단해진다.
상대의 심리를 알면,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계약 앞에서 상대는 ‘조건’을 말하지만, 진짜로 확인하고 싶은 건 ‘사람’이다.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문제가 생겼을 때 함께 풀 사람인지.
거래의 마지막은 숫자가 아니라 신뢰의 온도로 결정된다.
계약이 깨졌다고 해서 실패가 아니다.
그 순간 상대의 불안을 읽고 다독일 줄 안다면, 다음 기회는 반드시 돌아온다.
사업에서 중요한 건 거래의 수가 아니라, 사람을 잃지 않는 태도다.
그 태도를 잃지 않으면, 돌변한 계약도 결국 다시 돌아온다.
- 멘토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