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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정치 이야기로 분위기 흐리는 유형

『知彼者 心安也』 스물세 번째 글

by 멘토K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가장 피해야 한다는 주제가 있다.

종교, 돈, 그리고 정치.


그중에서도 정치 이야기는 순식간에 공간의 분위기를 바꾼다.


웃음이 오가던 자리도, 정치 이야기가 한 번 나오면 공기가 묵직해지고, 누군가는 얼굴이 굳고, 누군가는 갑자기 말이 많아진다.


이 장면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에게 악의가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은 “그냥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은 거의 항상 누군가에게는 ‘감정의 스위치’를 건드린다.


정치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정체성과 경험, 감정이 얽힌 주제이기 때문이다.



왜 정치 이야기는 그렇게 쉽게 분위기를 깨는가


정치 이야기가 위험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의견 차이가 곧 ‘나와 너의 가치 차이’처럼 느껴진다.


둘째, 사람들은 정치적 의견을 논리보다 감정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정치 심리학자들은 이를 정체성 기반 사고(identity-based thinking)라고 부른다.


사람은 정치적 의견을 ‘내가 옳다’고 믿는 게 아니라,

‘이 생각을 하는 내가 누구인가’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 이야기를 꺼낼 때 의도와 무관하게 다음 현상이 나타난다.


누군가는 말문을 닫는다.


누군가는 자신의 입장을 강하게 방어한다.


누군가는 대화의 중심을 빼앗겼다고 느낀다.


누군가는 낯선 적대감을 느낀다.


정치 이야기는 논리가 아니라,

“내가 옳다”와 “네가 틀렸다” 사이의 감정적 틈새를 만드는 주제다.



실제로 있었던 한 사례


한 직장 워크숍에서 일어난 일이다.

점심 식사 중 팀원들이 가벼운 일상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한 직원이 뉴스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정부가 하는 거 보면 답답하지 않아요?”

순간 분위기가 변했다.


다른 직원이 조용히 말했다.

“저는 오히려 요즘 정책 중에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는데…”


두 사람의 말투는 겉으로는 매너 있었지만,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 뒤로 식사 분위기는 더 이상 자연스럽지 못했다.


직접적인 갈등으로 번지진 않았지만,

식사 후 돌아가는 길에 한 직원이 이렇게 말했단다.


“저런 이야기는 굳이 점심시간에 안 했으면 좋겠어요. 괜히 사람 사이 어색해져.”


이 경험 이후로 그 팀은 ‘정치 금지 룰’을 조용히 만들었다고 한다.


누군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정치 이야기로 분위기 흐리는 사람들의 심리


정치 이야기를 끊임없이 꺼내는 사람은 몇 가지 심리를 갖고 있다.


1) 인정 욕구형 — “내 의견이 맞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이 유형은 정치 이야기를 통해 ‘내가 아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특히 정보에 밝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이럴 때가 많다.

“내가 더 잘 알고 있다”는 확신이 그들을 대화의 중심으로 끌어올린다.


2) 감정 배출형 — “답답함을 털어놓고 싶다”


정치는 불안, 분노, 실망 같은 감정을 포함한다.

그래서 이들은 억눌린 감정을 풀기 위해 정치 이야기를 꺼낸다.


하지만 감정의 표출은 관계의 갈등을 불러오기 쉽다.


3) 분위기 오독형 — “여기도 다 같은 생각이겠지?”


이 유형은 모두가 비슷한 의견일 것이라 착각한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민감한 주제를 꺼낸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누군가는 같은 생각이 아닐 수 있다.

문제는 그 ‘다름’을 발견하는 순간 이미 분위기가 깨진다는 것.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정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도 나름의 감정과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계를 지키려면 ‘대응의 기술’이 필요하다.


1) 대화를 다른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돌려라


“그 문제는 여러 의견이 있겠죠. 근데 아까 말한 그 얘기 좀 더 들어보죠?”

특정한 입장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대화를 회복하는 방식이다.


2) 공감은 하되 동조는 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요즘 다들 여러 생각이 많죠.”

이 말은 상대를 인정하되, 내 입장은 드러내지 않는 중립의 언어다.


3) 유머를 통해 긴장을 낮춘다


“정치 이야기는 다음 총선 때 하시죠. 오늘은 밥이 더 중요합니다.”

가볍게 웃음으로 넘기면 상대도 무안하지 않고 분위기도 풀린다.


4) 나의 경계선을 지키는 말


“저는 정치 얘기는 잘 안 해서요. 대신 다른 얘기해요.”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분명한 자기 기준을 세우는 방법이다.



관계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지혜


정치는 결국 ‘무엇이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의 문제다.

그만큼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느낀다.


그래서 직장, 이웃, 친척 모임처럼

연결이 오래 지속되는 관계에서는 더 조심해야 한다.


정치 이야기는 이성의 대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정의 대화다.

감정의 대화는 쉽게 상처를 남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지키고 싶다면,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고, 관심사를 이야기하며,

연결을 강화하는 주제를 선택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 결국 정치 이야기가 흐리는 건 분위기가 아니라 ‘관계의 온도’다


정치 이야기를 듣기 싫은 이유는 단순히 의견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그 순간 상대가 내 이야기에 관심이 없고,

자신의 ‘옳음’만 증명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사람일수록,

실은 고립되기 쉽다.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타인의 마음을 읽는 데는 서툴기 때문이다.


“知彼者 心安也.”


사람을 이해하면 마음이 편하다.


정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의 속마음을 알면,

괜한 분노 대신 작은 이해가 생긴다.


그 사람도 결국

‘내 목소리를 누가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

‘불안을 나누고 싶은 마음’,

‘내 생각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확인’이 필요해서다.


그 마음을 이해하면, 우리는 관계의 중심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

정치가 아니라 사람을 먼저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이 관계를 지키는 진짜 지혜다.


- 멘토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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