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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학부모 모임 속 서열 싸움의 심리학

『知彼者 心安也』 스물두 번째 글

by 멘토K



학부모 모임은 참 독특한 공간이다.
학교라는 공적인 장소에서 만나지만, 분위기는 조심스럽다 못해 팽팽할 때가 많다.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이 흐르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묘하게 순서를 만들어낸다.
이 공간에서 가장 흔히 관찰되는 것이 바로 '서열’이다.



■ 왜 학부모 모임에는 서열이 생길까?


이건 단순한 인간관계의 이슈가 아니다.
아이의 문제와 직결되는 ‘불안’이 가장 큰 원인이다.


1) 불안의 투영 — “내 아이가 불리해질까 봐”


부모들은 의식하든 못하든, 모임에서의 위치가 아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선생님과 가까운 학부모가 정보에 더 빠를 것 같고,

학급 대표 부모가 더 신뢰받을 것 같고,


주도적인 부모 아이는 학급 내 활동에서 소외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불안이 서열 경쟁의 시작이 된다.



2) ‘보이지 않는 비교’가 긴장을 만든다


어떤 부모는 아이의 성과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반면, 어떤 부모는 은근히 자랑한다.
“저희 아이는 독서 발표대회에서 상을 받았어요.”
이런 말 한마디는 누군가에겐 자랑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압박이 된다.


비교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서열이 만들어진다.
누군가는 지도자 역할로 올라가고, 누군가는 뒤로 물러선다.


3) 역할 중심 문화가 서열을 가속화한다


학급 대표, 학부모회 간사, 행사 담당…
학교 모임은 늘 ‘역할’을 나누는 과정이 있다.
그런데 역할이 곧 ‘영향력’처럼 느껴지는 문화가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열 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 흔히 관찰되는 학부모 모임의 유형


학부모 모임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 유형이 있다.


① 주도권형 부모


회의가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중심에 선다.
말을 많이 하고, 결정을 빠르게 유도한다.
이들은 리더십이 강하다기보다 불안을 통제하려는 심리가 강한 경우가 많다.
“내가 움직여야 아이도 안전하다.”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다.


② 침묵 관찰형 부모


말은 적지만 관찰은 빠르다.
서열 구조를 읽고 자신의 위치를 조심스럽게 조정한다.
겉보기엔 소극적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많은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③ 은근 자랑형 부모


직설적인 자랑은 하지 않지만,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린다.
“아이 공부도 해야 해서 요즘 학원 상담이 많네요.”
이 말은 사실상 “우리 아이 공부 열심히 해요”라는 메시지다.
이 유형은 경쟁 속에서 ‘비교 우위’를 확보하려는 욕구가 있다.


④ 거리두기형 부모


모임에는 참석하지만 깊게 관여하지 않는다.
아이와 자신을 과도한 비교 경쟁에서 보호하기 위해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이들은 의외로 자존감이 높고, 자신의 기준이 명확한 경우가 많다.



■ 학부모 모임에서 상처받지 않는 심리 기술


학부모 모임은 누구에게나 불편할 수 있다.
서열을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공간에서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


1) 비교를 멈추고 ‘내 아이의 속도’를 바라보기


서열 구조는 대부분 부모의 비교에서 시작된다.
“옆집 아이는 벌써 영어책을 읽는데…”
비교를 멈추는 순간, 서열의 굴레도 풀린다.


2) 관계의 중심에서 벗어나도 괜찮다는 허용


모임에서의 위치가 아이의 성장을 결정하지 않는다.
아이의 성장은 가정에서 만들어지고,
학교는 그저 경험의 한 축일 뿐이다.


3) 불필요한 경쟁에서 손을 떼기


학부모 모임은 ‘경쟁의 장’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협력하는 커뮤니티다.
이 관점으로 전환하면 훨씬 편안해진다.


4) 서열을 만들려는 사람과 적당히 거리두기


주도권 집착형 부모와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그들의 불안과 페이스에 말려들기 쉽다.
적당한 물리적·정서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다.



■ 결국, 학부모 모임의 서열 싸움은 ‘부모의 불안 경쟁’이다


‘내 아이가 뒤처지면 어떡하지?’
‘다른 부모보다 정보가 늦으면 불리할까?’
이 불안이 서열 경쟁을 부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놀랍도록 자기 속도로 성장한다.
서열이 높다고 아이가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서열이 낮다고 아이가 손해 보는 것도 아니다.


학부모 모임 속 서열 싸움은 부모가 만든 환상이다.
그 환상에서 벗어나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知彼者 心安也.”


상대를 알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나를 알면 더 편해진다.


학부모 모임 속 보이지 않는 서열 게임을 이해하면,
쓸데없는 긴장에서 벗어나
아이와 나에게 더 필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열이 아니라,
우리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는 환경을 만드는 부모의 마음이다.


- 멘토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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