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회복과 우정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비슷한 상황과 상처를 지닌 사람을 만날 때 형성되는 공감대는 매우 강력하다고 한다. 서로의 경험과 아픔을 나누며 더 빨리 친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때 서로에 대한 믿음 즉 이 사람은 나와 앞으로도 계속 같이 갈 거다라는 마음이 생겨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우정에 큰 변화를 겪는 시점이 있는데 둘 중 한 사람이 예전에 경험했던 상처가 회복되어서 move on 즉 A시점에서 B시점으로 옮겨갈 때 혹은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던 사람이 나보다 훨씬 더 나은 환경을 갖게 되었을 때라고 한다. 나랑 쟤랑 비슷했는데 이제는 아닐 때 느끼는 소외감 질투심 같은 게 우정을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 같은 것이다. 이 속담처럼 인간의 민낯을 까발리는 게 또 있을까?
내가 잘되어도 남이 잘되면 싫은데 심지어 나랑 비슷했던 애가 나보다 더 잘 나가면 환장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다. 자꾸만 비교가 되면서 나는 왜? 쟤는 어째서?라는 생각만 머리에 맴돌 테니까. 나 자신이 불안정하고 자기 연민에 빠져있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면 더욱 원망의 깊이는 깊어지고 상대를 향한 앙칼진 마음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함께 쌓았던 추억과 우정은 쓰레기통의 휴지조각이랑 다를 게 없는 것이 된다.
뾰족함이 상대와 나를 향해있을 때 얼마나 불편한가? 괜찮은 척 기쁜 척 쿨한 척하다가도 울컥하고 올라오면 상대를 향해 툭 던져보는 앙칼진 말들은 다시 자기혐오가 되어 나에게 생체기를 낸다.
내가 한없이 귀하고 괜찮은 존재임을 알 때 건강한 우정도 쌓을 수 있다는 걸 살면서 깨닫는다. 축하해 줘야 마땅한 일조차 질투와 시기가 되어 우정을 깎아내리고 소중한 자신을 깎아내릴 때 우정도 사라지지만 나도 사라진다.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간사한가? 그래서 우리에겐 신이 필요하다.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빌립보서 4장 13절의 말씀을 성공을 위해서 꼭 외워야 할 성경구절 중 하나로 취급을 하곤 하지만 그 말씀 전에는 바울이 어떤 형편에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는 구절이 나온다. 바울이 스스로 만족하게 생각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하는데 그건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게 아니라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신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셔야만 이길 수 있는 게 사람의 본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