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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문주원 Nov 23. 2022

사소한 오해


'개?'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핫초코를 테이크아웃 잔에 받아 들고는 하얀색 뚜껑에 검은색 펜글씨를 한참 들여다봤다.  


 


'개'


 


스타벅스처럼 주문자의 닉네임을 써놓은 것도 아니고 이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바리스타는 무슨 생각으로 개라고 쓴 핫초코를 내게 준 걸까? 몹시 혼란스러웠다. 내가 개를 닮았나? 조금 닮긴 했지. 그렇지만 그건 장난칠 때 내 친구들이나 하는 말인걸. 내 주문 방식이 무례했나? 그럴 리가! 그냥 바리스타 기분이 '개' 같았던 건 아닐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 먹는 음식에 개라고 쓴 건 너무 하잖아. 그냥 가서 물어볼까?    


 


'저기... 제 컵에 왜 개라고 쓰셨나요?'


 


질문도 질문이지만, 대답을 듣는 것이 두려웠다.


 


'개'에 대한 상념으로 음료가 넘어가지도, 카페를 쉬이 나갈 수도 없었다. 물어봐?, 말아? 이대로 가면 계속 생각날 텐데... 궁금증은 평생 해결되지 않겠지. 그렇지만 가서 물어보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어떤 말이 나올지 모르지만, 어떤 식으로든 상처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평생 카페에서 가장 깊은 생각에 잠긴 5분이었다. 연이은 고민을 하며 종이컵을 만지작 거리다 무심코 빙그르르 돌렸는데, 종이컵 주변이 CG처럼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180도 회전한 '개'가 'HC'로 변했다. HC? HC...? Hot Chocolate!  


 


내가 주문한 음료는 핫초코였다. 바리스타는 핫초코의 약자를 영어로 써놨을 뿐이다. 개가 아니었다. C의 곡선에 각이 지면서 ㄱ처럼 보인 것이다. 기분이 몹시 편안해졌다. 반쯤 식은 핫초코를 호록, 마셨다. 내 평생 가장 달콤한 핫초코였다. '저기... 제 컵에 왜 개라고 쓰셨나요?', 물어보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컵을 돌려볼 생각을 한 내 무의식이 무척이나 기특했다. 만일 질문을 했다면 좀 더 극적으로 두고두고 풀 '썰' 하나가 생겼겠지만 말이다. "글쎄, 어떤 손님이 나보고 왜 개라고 써서 줬냐고..." 나에게도, 바리스타에게도 말이다.


 


가끔씩은 거꾸로 봐야 보이는 진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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