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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문주원 May 18. 2023

그리운 이름, 낯선 사진

 나는 세상을 떠난 이들의 연락처를 지우지 않는다. 지우지 않는다는 것보다 지우지 못하는 쪽에 더 가깝다.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어도 그러하다. 문득 연락처 목록에서 그 사람의 이름이 보일 때마다 그와 그의 가족들, 친구들을 위해 잠시 기도하며 애도를 이어간다.  


  카카오톡을 사용하며,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그들과 조우한다. 프로필 사진 때문이다. 그대로인 프로필 사진과 나눴던 대화들을 보며 상대의 부재를 온전히 실감하기 어렵다. 채팅방이 아직 활성화될 때 메시지를 보내고픈 충동이 들 때도 있다. 혹여라도 가족이 보고 마음 아파할까 차마 전송 버튼을 누르지는 못한다. 가끔 그의 부고를 모르고 지인들이 남기는 카카오스토리 댓글들에 마음이 철렁하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대화창 목록에 (알 수 없음)이 뜨면, 불현듯 서글픔이 밀려온다. 나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아는데, 왜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인가. 아직 또렷이 기억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렇게 말하는 메신저 회사가 무정하게 느껴진다, 번호 해지 신청을 했을 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떠올리며 한층 더 슬픔이 깊어진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친구 목록에 이름과 불일치한 사진이 나타나는 날이 온다. 이름은 내 핸드폰에 저장된 그대로인데 완전히 낯선 타인의 사진으로 바뀌는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번호의 주인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것, 평소라면 별 거 아닌 그 흔한 일들이 당혹스럽게 다가온다. 대상을 알 수 없는 서운한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번호를 지우지 못한다. 불완전한 흔적이라도 기억하며 더 애도하고 싶기 때문일까, 삭제라는 행위가 괜미안하게 느껴져서일까.  


 3년 전, 어떤 번호를 저장하고 동기화를 하는데 '외할아버지'가 '새로운 친구'라며 친구 목록 상단에 떴다. 자기소개 문구와 아이돌 프로필 사진을 보니 어린 친구가 그 번호의 새 주인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매일 눈물이 터지긴 했지만 그날은 한참을 울었다. 할아버지는 구형 핸드폰을 사용하셨고 카카오톡 계정이 없으셨다. 입원해 계실 때 혹시라도 영상통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중고카페에서 급하게 스마트폰 공기계를 구매해 할아버지의 계정을 만들었었지만 결국 한 번을 사용하지 못했다. 사람 실루엣이 그려진 기본 프로필 이미지에 '외할아버지'라는 이름이 몇 년 간 익숙하다가 갑자기 낯선 사진이 보이니 벅찬 그리움이 마음을 무너뜨렸다. 이 세상에서 할아버지가 영영 사라진 것 같았다. 이 글을 쓰며 오랜만에 '외할아버지'를 검색해 봤다. 마스크를 쓴 어린 학생이 교실에서 뽀로로 루피 그림을 든 채 브이를 하고 있다. 친구가 전학을 가는지, 'ㅇㅇ아 잘 가'라는 인사도 적어놓았다. 귀여워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어린아이도 서서히 작별하는 법을 배워 나가는구나 싶어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이제는 그렇게 덧입혀진 흔적을 보아도 3년 전처럼 마냥 서럽지는 않다.   


  그렇게, 낯선 사진의 그리운 이름들을 바라본다. 별을 올려다보는 대신,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름을 쓰다듬어 보는 밤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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