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움직인다. 창밖으로 보이는 많은 것들을 그 자리에 두고 떠나간다. 건물도, 신호등도, 사람들도 모두 내가 탄 자동차 뒤로 지나갔다. 나란히 달리던 다른 차들도 행로를 달리한다. 오직 달만이 같은 속도로 흘러갔다. 신호에 멈춰 서면 달도 함께 기다려주었다. 6살 무렵,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본 달이 무척 인상 깊은 장면으로 남아있다. 어딜 가나 동행하는 달에게서 신비로움과 든든함을 느꼈다. 지금도 밤하늘을 올려볼 때마다 마음이 일렁인다.
내 이름에도 달이 뜬다. Moon. 중고등학생 때는 사인을 할 때 n 오른편 위로 귀퉁이가 살짝 파인 달이 빼꼼히 나오도록 그려 넣었다. 미국에서 내 이름을 서류에 기입하는데, 접수를 받던 이가 정말 네 패밀리 네임이 Moon이냐고 물었다. 괜히 뿌듯해진 나는 한국에는 문 씨가 있다고 답하며, 서툴지만 신나게, 한자 文의 의미까지 이야기했다. 최근 작사 수업 수강생 한 분이 마지막 과제를 제출하며 가사 하나를 더 첨부했다. 제목은 <달 (Moon)>이었다. 나를 생각하며 쓴 가사라 했다. 따뜻하고 고운 마음과 노랫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름 덕일까 누군가는 나에게서 달을 떠올린다.
사촌 오빠가 부인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언니가 '해처럼 밝아서 좋았다'라고 한 적이 있다. 나는 사람들이 누군가의 '밝음'을 이야기할 때 지레 위축이 들곤 한다. 어린 시절, 어둡다는 말을 들었던 시기가 있어서일까. 동네 시장에 있던 치과 선생님을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어린애가 얼굴이 너무 어두워서 차트에 따로 기록을 해놨다고 나를 기억하셨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단체 사진을 찍던 날이었다. "거기 머리띠 한 학생 표정 때문에 한 번만 더 찍을게요"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몇 번이나 한숨을 쉬셨고 재촬영이 이어졌다. 원피스 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갔다. 밝은 표정을 지으라고 수차례 외치시고, 현장을 지켜보던 학부모들도 시범을 보였다. 가슴이 세차게 두근대고 현기증도 나는데 카메라 앞이니 움직이지도 못하고 몹시 괴로웠다. 나는 남들의 표정을 열심히 따라 했지만 결국 찍는 분이 만족하지 못한 채 촬영이 끝났다.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 사진뿐 아니라 그 자리에서도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20여 년이 지났는데도, 교과서에 실린 사진 덕에 그 장면이 여전히 선명하다. 어떤 기억은 시간에 퇴색되어도 강한 얼룩으로 남는다. 사촌 오빠의 말도 내 지난 날을 상기시켰다. 그런데 오빠는 뜻밖의 말을 덧붙였다.
"주원이는, 해처럼 밝은 건 아니지만, 달처럼 은은하게 주변을 비추는 그런 게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잔뜩 움츠렸던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을 자주 떠올릴수록 오랜 세월 주눅 들어있던 어리고 작은 마음이 자라났다. 내 마음에 자리 잡은 얼룩이 신경 쓰일 때 그 자리를 내려다보기보다 고개를 들어 은은하게 빛나는 달을 올려다보았다. 그 빛을 고이 담아, 어두운 밤을 동행하는 이들의 발걸음을 비추고 싶다. 아무리 어두워 보이는 사람도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있다. 저마다 타고난 광량은 다를지라도, 꺼지지 않는 빛이 있다. 미약한 빛이라도 당신과 나의 빛들이 모여 같은 곳을 가리킬 때, 가야 할 그 길이 아주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