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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범 Apr 21. 2024

DAY1 : KNOCK-OUT

대문자 P 남성의 계획 없던 여행!

지금의 9월에서 23년을 되돌아보면 정말 힘든 한 해였다.

 내가 사랑한다고 믿었던 일의 설레는 첫 시작, 그리고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며 번아웃(Burn-out)으로 끝맺음하였기 때문이다. 열심히만 하면 될 줄 알고 영리하지 못하게 직장생활을 하며 주위에서 몸 챙기라는 말을 항상 듣고 지냈다. 내가 살아내고 있는 삶이 사실 지옥의 굴레였다는 건 나의 오랜 친구가 해 준 말 덕분이었다. “너 자신을 아낄 줄 알아야 한다. 결국 모든 건 너의 주체적인 삶을 위해서 돌아가야하는 것”. 돌아보면 좋은 기억은 그다지 없는 직장의 퇴사 후 그간 계획을 세우고 처리해야하는 것에 대한 압박감이 심했던 탓인지, 나는 좀처럼 짜여진 일상 자체를 살지 못했다. 흘러가는 하루를 시간이 부족해 붙잡는 다거나 그래야할 이유도 없는 나날들이 내 마음에 너무나도 여유를 흘러넘치게 해 매일매일의 미소로 번졌다.


하기 싫은 일이 생겼다,

 계획하는 것. 일별로 지역에 따른 방문장소를 정리하여 정해진 기간에 그것을 모두 마쳐야하는 ‘여행계획’을 짜야했는데 바로 부모님께서 고생했으니 어릴 때 갔었던 뉴욕에 혼자 여행을 다녀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모든 경비까지 지원 해주시는데 설레는 기분으로 여행 정보들을 수집하여 짜는 것이 정상이거늘! 고민하고 몰두하는 것 자체가 일처럼 느껴졌던 나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웠다. 이상한 소리같겠지만 이 때는 유튜브에 들어가면 보고 싶은 영상들을 상단 탭에 추가하다가 “아 이걸 언제 다보지? 할 수 있을까?”라는 [업무처리 사고 방식]이 쉴 때마저 아직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렇게 떠났다. 

 MoMa 미술관 방문 예정을 위한 아버지의 짧은 미술역사 강의와 압박감을 이겨내며 만든 나의 구글맵 지도와 함께, 세상의 모든 것을 자본주의로 녹여낸 뉴욕으로



DAY1 : KNOCK-OUT


 한국의 완벽한 승이였다. JFK 공항에 내려 입국심사를 기다리며 뉴욕에 처음으로 느낀 점은 인천공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와 수용력이였다. 출입국심사관의 ”WHY ARE YOU COME TO USA?”라는 간단명료한 질문과 함께 뉴욕에 입성했는데 숙소로 찾아가는 길을 구글맵으로 찾아보고 매우 당황했다. 분명 대중교통으로 쉽게 갈 수 있는 건 맞는데 한국처럼 숫자로 매겨진 호선이 아닌 고유 명칭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꽤나 고생했다. 빈 말이 아닌 게 1시에 공항을 빠져나와 5시에 숙소를 도착했기 때문이다. 구글맵 상 소요시간은 1시간이었다는 것이 comedy.


사건의 발달은 메일 한 통이었는데 숙소 사장님이 예약 사이트와 실주소가 다른 점을 미리 노티해주었고 나는 이것을 철저히 무시한 채 당당히 향했던 것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408 West 36th Street]. 409로 알고 간 나는 똑같은 도로를 무거운 캐리어와 힘께 쉴 새 없이 돌다가 전화 통화로 나의 대략적 위치를 알려준 뒤 다행히도 내가 숙소 근처있던 터라 주인에게 붙잡혔다.


 엘레베이터가 없었다. 뉴욕의 햇살은 아직 뜨거웠던 터라 땀 범벅이 되어있었는데 스펙터클한 전개로 내 숙소는 6층이었고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데 정말 오랜만에 목에서 피맛이 났다. 1박에 한화 33만원 정도하는 호텔의 이름을 달고 정말 열약한 환경을 가진 곳이지만 무엇보다 계단으로 올라갈 때 짐도 안 들어주는 주인장 마인드가 가장 후졌다. 맨하튼에 위치한 숙소로 관광지 접근은 매우 좋았던 터라 공용 욕실 및 화장실, 먼지 가득한 환풍기와 큰 침대하나가 끝인 방인 것만 제외하면 만족했다. 미쳤다는 뉴욕 물가를 몸소 체감했던 순간이었다. 사실 지하철을 탈 때부터 느꼈다. 공항 전용 지하철인 Air Train의 요금은 8.5$, 일반 지하철은 개찰구를 찍을 때마다 2.9$로 한국이 비하면 3배 수준인데..내가 미국에 온 게 맞구나 싶었다.


 눈을 뜨니 20시. 짐을 풀고 잠깐 눕는 다는 게, 그 자세로 잠들어 버린 후 요란하게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에 깼다. 창 밖은 이미 밤이었고 아직 정신은 몽롱해서 그래서, 정말 푹 잤다. 숙소 주변에 유리병을 깨는 소리가 들리고 위협적인 노숙자가 꽤 많아 그 시간에 나가기엔 무서웠다. 본의 아니게 이날 교통비 외 및 저녁을 스킵해 지출이 없던 것이 다음 날부터 생각보다 더 높았던 물가에서 생존하게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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