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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다 Dec 25. 2023

나를 이해해 주세요

영화 괴물을 보고 나서

 코로나가 한창인 시기를 지나며 오랫동안 영화관에 가지 않았다. 정말 오래간만에 영화를 보러 가게 된 것은 친한 동료분께 추천을 받은 '괴물'이란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포스터를 보고서 "음.. 이거 많이 우울한 영화 아닌가요?"하고 망설였더니 "우울하지만은 않은 영화야.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야."란 대답이 돌아왔다. 마침 당일 업무 시간이 끝나고 적당한 시간에 상영일정이 있었다. 팝콘과 음료를 챙겨 들고 어두운 상영관에 자리를 잡았다. 긴 시간 집중해서 영화를 보고 나오며 어떤 우울인지 모를 감정이 들었다.


 영화는 세 가지 시점에서 진행되었다. 어머니, 교사, 아이들. 같은 현상과 사실을 두고 각자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너무 달라서 결국 진실은 무엇일까 싶어졌다. 어떤 것도 온전히 진실일 수는 없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왜곡이 낳는 결과는 때로 참혹할 수 있다는 것이 슬프게 느껴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보통 그렇게 일이 잘 풀리지 않기 일쑤이다. 나는 매우 소심하고 위축되어 있으며 그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줄 때가 많다. 사회 초년생일 때에는 아직 어리고 처음이란 핑계라도 댈 수 있었지만 몇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여전히 미숙하고 자신감 없는, 작고 작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어떨지 생각하면 부끄러워서, 그런 게 아니에요, 실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외치고 싶어졌다.


 그런데 실제의 나란 그럼 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모두가 나를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으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었으면 하고, 소심하면서도 고집이 세기도 하고, 대체로 평화주의자이지만 발끈할 때가 있고. 어떻게 정의할 수 없는 이중적인 나,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이해해 주길 바라는 게 무리인 것 아닐까. 사랑하는 누군가를 나 역시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듯이.



그럼에도, 결국 끝까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서로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쉽게 단정짓지 않는 너그러움만으로도 서로를 지나치게 오해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노력을 통해 우리가 조금은 위로받을 수 있고, 미움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서로 마주 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무한하지 않기에,서로를 위한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집에 돌아가면서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가수 허회경의 노래를 듣는데 "당신은 내가 하는 말에 늘 고개를 끄덕입니다."라는 가사가 흘러나왔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당신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당신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전하고 싶다. 우리 모두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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