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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다 Dec 18. 2023

겨울 창가에 서서

 날씨가 싸늘하게 추워졌다. 오전에 사무실에 앉아있는데 한기가 맴돈다. 나는 더위를 엄청나게 타는 편인데 특히 살이 계속 찌면서 더위에 더 취약해진 느낌이다. 여름의 습도와 따갑게 내리쬐는 햇빛을 감당하기 힘들지만 한편으로 좋은 점은 오후 여덟 시 정도까지는 바깥이 환해서 왠지 보너스 시간이 주어진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여름과 마찬가지로 겨울에는 안팎의 온도차가 심할 때가 많다. 옷을 두툼하게 껴입고 덜덜 떨면서 안으로 들어가면 따뜻하다 못해 금세 더워져서 겉옷을 벗어던지게 된다. 겨울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두툼한 옷 때문에 몹시 좁아진 좌석이 기다리고 있어 거의 옴짝달싹 못하고 끼어 가야 한다.


 둘 중에 어느 계절이 더 나은지 생각해 보면 온도의 측면에서는 더운 것보다는 옷을 껴입을 수 있는 추운 날씨가 차라리 낫지 싶다. 하지만 일조량이 줄어들고 낮이 짧아지는 게 우울감에도 영향을 주는지 겨울에 좀 더 기분이 가라앉는 편이다. 한 해가 마무리되고 새로 시작되는 것에 설렘보다 싱숭생숭한 기분이 더 들어서 인 것 같기도 하다.



 어릴 때는 계절을 고대하며 기다리기도 했는데, 어쩌면 여름과 겨울에 방학이라는 거대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집에 에어컨이 생기기 전에 정말 너무 더웠던 여름날, 마침 그때 올림픽기간이었고 더위 속에 잠 못 들면서 밤새 경기를 실시간으로 시청하며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었다. 어느날은 억지로라도 오싹함을 느껴보려고 공포 애니를 시청하기도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너무 무서워서 동생과 덜덜 떨며 붙어서 잠을 잤다. 인형의 목이 돌아가면서 뚝 떨어지던 장면이 기억난다. 여름이 되면 납량특집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무서운 소재를 시청하며 더위를 식힐 수 있는 한편 출연자들이 놀라 혼비백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낄낄댈 수 있었다.


 겨울엔 뭐니 뭐니 해도 함박눈이 쏟아지는 날이 좋았었다. 공무원이 되고 나서 눈 오는 날이 마냥 반갑지 않아 진 것이 슬프기도 하다. 삽으로 퍼서 눈을 치우고 염화칼슘을 잔뜩 뿌려대야 하기에. 그래도 어릴 때만큼 눈이 많이 오지는 않는 것 같다. 그땐 정말 발목이 푹푹 잠길 만큼 눈이 내렸던 기억이 있다. 설날이 되면 오랜만에 사촌언니, 오빠들이 외갓집에 놀러 왔었고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어린 동생의 머리를 땋아서 묶어주고, 뒤뚱거릴 만큼 잔뜩 옷을 껴입히고서는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다. 외갓집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고 항상 둘이서 길을 나섰다. 눈이 얼어붙은 거리가 미끄러워서 비틀거리다가 엎어지기도 했다. 얼굴이 구겨진 동생을 달래며 전화부스에 들어가서 놀기도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걸어갔던 추억이 있다.


 오후가 되니 창가로 햇빛과 함께 따뜻한 기운이 들어온다. 겨울에 특히 눈이 오고 난 뒤에는 고요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마냥 우울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들뜨기보다 차분해지는 것일 뿐. 고요하게 지나간 시간과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계절이다. 겨울에는 군고구마, 군밤, 붕어빵 등 즐길 수 있는 각종 먹거리가 많기도 하다. 추운 바람을 뚫고 붕어빵 파는 곳을 찾아 팥 2개, 슈크림 2개를 받아 들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마음도 포근해진다. 이제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다가온다. 예전엔 제야의 종소리도 꼭 챙겨 듣곤 했는데. 이번엔 기다렸다가 꼭 들어야지. 다가오는 한 해가 따뜻한 기억들로 채워지기를 기원해야겠다. 이윽고 푸른 잎사귀가 다시금 돋아나는 것처럼 내 마음에도 생기가 불어넣어 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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