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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다 Dec 04. 2023

부끄러움과 함께

 부끄러움, 수치심을 느낀 순간들은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항상 부끄럼을 많이 탔다. 항상 처음부터 그랬나 정말?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도 내 멋대로 행동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잠들던 때가 있었는데. 방학 내내 일기를 하나도 안 쓰고 개학한 날 콧노래를 부르며 일기를 창작했고, 괴롭히는 남자애를 신발가방으로 후두려패던 시절. 언제부터 나는 이리도 작아지기 시작한 걸까. 동급생에게 돈을 뺏기기 시작했던 때부터였나, 내가 입는 낡은 옷들이 할머니 옷 같다며 놀림받던 때였나, 심기가 틀어지면 빽 소리를 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가슴 졸이던 때부터였을까. 뭐가 됐든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이 너무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게 나의 사춘기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후유증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다. 원래 세상이 이렇게 희끄무레한 것인 줄 알았다. 초등학교에 가고 나서 처음으로 시력검사를 하니 이미 시력은 0.1~0.3 정도로 몹시 좋지 않았다. 당연히 안경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안경을 안 쓰면 눈이 좋아질 수도 있다더라는 해괴한 논리로 초등학생 내내 안경을 사주지 않았다. 눈이 잘 보이지 않으니 칠판의 글씨를 보기 위해 눈을 비비고 부릅뜨면서 눈이 빨개지고 눈물이 맺혔다. 왜 부모님이 안경을 안 사주시니? 저도 잘 모르겠어요... 괴로움과 창피함이 뒤섞였다. 빨개진 내 눈을 보고 반 아이가 불쌍하다고 했다.


 나는 불쌍하고 불행해. 어느 순간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가지고 있는 옷이라고는 사촌오빠에게 물려받은 옷이나 싸게 구입한 화려한 꽃무늬가 들어간 바지 등 그런 옷들을 입고 다니다 보면 당연스레 놀림받기 일쑤였고 그럼 나는 또 작아졌다. 공부 외에는 나의 생활에 어떤 관심도 가지지 않는 부모님,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부모님의 말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그런 기억과 불편한 감정들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이제 성인이 된 지 오래이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자기 삶은 자기가 책임지는 거라는 말도 많이 보고 읽었지만, 결국 어린 시절과 성인이 된 후의 삶도 연장선 상에 있는 것 아닌가. 그 기억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고 굳어져버린 채 잘 변하기 힘들어졌으니까. 원망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때로 마음이 괴로우면 세상 모든 게 다 원망스러워 집에 대한 원망도 밀려오기 일쑤이다. 아직도 어린 시절을 다 흘려보내지 못한 내가 또 부끄럽고 부끄러워진다.


 무언가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자꾸만 나를 지우개로 말끔히 지워버리고 싶어 진다. 실수를 자꾸만 자신과 동일시하게 된다. 치료를 지속하고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어가면서, 그래도 나에게 조금씩 관대해지고 있다. 어쩌면 약간 놓아버리는 건지도 모르지만. 예전엔 업무를 볼 때 글자 하나라도 틀렸을까 봐 눈에 불을 켜고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지금은 틀린 걸 발견하면 아이고, 실수했네. 하고 고치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나는 종종 나 자신의 존재 자체가 어떤 실수는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나를 좀 더 평범하게 바라볼 수 있구나, 내가 평범한 보통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이 든다.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 때로는 부처와 같은 마음으로 품어주다가도 어떤 순간이 오면 또다시 나를 내팽개친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내팽개친 나를 다시 끌어안을 내가 있기 때문에.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아주 조금 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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