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도시에서 9년째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다. 이 곳은 내가 가진 첫 직장이다. 왜 공무원이 되기로 생각했냐고 하면 내 인생의 주된 흐름이 그래왔듯이 엄마의 말에 떠밀리듯 결정아닌 결정을 했다. 엄마는 나처럼 소극적인 사람은 사기업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장했고, 나는 그 사실을 부인하고 싶으면서도 어쩐지 그럴 것 같다고 수긍해버렸다. 사실 공무원 역시 소극적인 사람이 살아남기 힘든 직종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 원래 나는 도서관 사서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교도 관련 학과인 문헌정보학과에 진학했고 그 곳에서 교직이수도 하면서 사서교사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했다. 하지만 당시 사서도 사서교사도 취업의 문이 비좁았고, 엄마의 바람대로 나는 일반행정직 공무원 준비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불행이 예견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의 말을 항상 부인하면서도 뭔가 알 수 없이 그 영향력에 끌려다녔다.
수험생활은 불행하게도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고 길어져 갔다.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이렇게 계속 합격하지 못하면 난 뭘 해먹고 살아야 하나 불안에 떨었고, 마지막 해에 준비할 때는 불합격하면 정말 어디 가서 생을 마감하기라도 해야 하나 싶은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사실 뭔가 실패했을 때 그대로 생을 마감해야 할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살아오는 내내 나는 거의 모 아니면 도의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고 언제나 무언가 내 인생이 망가질 것 같은 불안에 떨어왔다. 겨우 합격은 했지만 이미 불안과 걱정으로 내 예민함은 정상을 벗어나있었던 것 같다.
수험생활이 끝나면 그래도 조금은 휴식기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불행히도 업무의 시작은 빨랐다. 정식임용이 되고 나는 내가 살던 동네의 주민센터에 배치되었다. 그 곳에서 꽤 오래 살아왔지만 이전에 주민센터에 간 적은 거의 없었고, 가끔 갔을 때도 그리 바빠보이진 않네 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죗값을 치르기라도 하듯 첫 날부터 어마어마한 민원의 행렬이 이어졌다. 살아생전 처음 들어보는 인감증명서라는 문서를 하루 종일 발급했다. 심지어 나는 이게 얼마나 중요한 문서인지도 모르고, 사전 교육같은거 것도 받아본 적도 없는데 그냥 당일에 도착하자마자 자리에 앉아서 짚어주는 대로 더듬더듬 따라하며 발급해야 했다. 물론 발급방법 자체는 간단하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발급되는 문서에서 무언가 하나 잘못되면 문제가 불붙듯이 커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의 불안은 극도에 달했다. 원래도 나는 사서 걱정을 하는 타입이지만 그 정도가 심각했다. 집에 돌아가서 문득 ‘내가 오늘 받았던 대리발급 위임장에 무언가 공란이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밑도끝도 없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하면 도저히 그대로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다시 주민센터로 달려가서 해당 문서를 확인하고 돌아와야 했다. 한번 두번 세번, 확인하는 횟수는 점차 늘어만 갔다.
내가 이상한 상태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왠지 정신과에 거부감이 들어서 병원에 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나마의 용기를 내서 어느 사설 상담소를 찾아갔는데 아마 1회 상담에 8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 나에게는 거금이었음에도 이걸로 증상이 나아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상담을 이어갔다. 그런데 뭔가 상담 중에 내 감정이 삐그덕하는 순간이 왔는데, 내가 쓴 일기를 받아본 상담사가 다른 이의 치료의 목적으로 그것을 보여줬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였다. 내 마음의 고통을 적어놓은 글을 내 동의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줬다는 것에서 나는 큰 배신감을 느꼈던 것 같다. 신뢰가 깨어지자 상담을 더 이어갈 수가 없었다. 결국 그만두게 되었고 오히려 상담을 시작하기 전보다 더 마음의 문을 걸어잠그게 되었다.
하지만 치료없이 상태가 호전될리는 없었고 나의 문제적 이상행동은 계속되었다. 극단적인 생각이 자꾸만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일을 시작한지 3년째 되던 해였던 것 같은데 사내에 상담실이 생겼다고 했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상담실에 가서 상담을 받고 꽤 도움이 되고 기분이 나아졌다더라 하고 동기언니가 말해주었다. 나는 사설 상담실을 찾아갈 때 항상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혹시나 누가 내가 여기에 들어가는 걸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하는 불안 속에 있었는데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상담실을 찾아간다니. 상담을 예약하고 찾아가게 되었을 때 사실 예전 기억때문에 처음엔 크게 기대하지 않고 약간 경계심이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결국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해줄 존재가 너무나 필요했기에 마음을 열고 내 감정들이나 경험들을 이야기했고, 심리검사를 받은 후 병원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다. 몇 군데 추천을 해주신 곳 중 한 병원을 방문해서 진료를 받고 약처방을 받기 시작했다. 약을 복용하고 상담을 꾸준히 진행하면서 마음의 상태가 조금씩 나아져가는 것을 느꼈다. 특히 강박증에서 비롯된 끊임없이 확인을 거듭하던 증상이 급속도로 호전되었다.
그 뒤로도 약 1년여 넘게 꾸준히 상담을 이어가면서 마음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여전히 크고 작은 마음의 문제들은 종종 표출되고 우울증약은 아직도 복용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제는 약을 먹는다는 사실이 예전처럼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사실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냥 내가 아팠구나 아직도 좀 덜 나은 상태구나 그냥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상담과 약을 복용하는 것만으로는 쉽게 상처받는 연약한 심장이 강해질 수는 없는 노릇인지, 나는 오랫동안 근무를 이어오고 있음에도 항상 쉽게 깨어지는 멘탈을 가지고 있다. 여태 버틴 게 용하다는 반응도 듣곤 한다. 이제 좀 익숙해질 법도 한데 무언가 문제 상황에 직면하면 심장은 쿵쾅대고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하는지. 그렇게 진을 빼고 나면 뭔가 내가 참 우스운 사람처럼 느껴져서 우울감이 다시 찾아들곤 한다. 앞으로도 이 곳에서 나는 계속 버티어나갈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지고,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찾아나설 능력도 용기도 없다.
특히 9년차가 된 올해 나는 큰 슬럼프를 겪었다. 삶은 항상 좋을수도 없고 항상 나쁘지도 않은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무언가 지치고 나사가 빠진 느낌이 들어서 힘든 한 해였다. 그럼에도 어쨌든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다가오는 한 해는 또 어떤 사건들이 기다릴지 모르고,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 앞서지만 그래도 또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이제는 생각한다. 여전히 부족하고 삐그덕대는 자신이지만 그래도 나에게도 버티는 힘이 있음을 믿는다. 계속해서 버티다보면 언젠가는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설레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 날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런 나날들을 꿈꾸는 것이 나의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