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의 차이일 뿐인데 연말과 새해는 퍽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에게는 어쩐지 후련함과 희망참보다는 후회와 두려움이 더 큰 시기이기도 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피로감과 두통이 가득 몰려와 특히 눈 주위의 뻑뻑한 피로가 심하다. 새해부터 처리해야 할 민원에 대한 걱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한다고 달라질 거 없다지만 생각과 걱정을 떨쳐내기란 참 힘들다.
창 밖을 내다보니 역시나 날씨는 우중충하다. 기분 좋은 하루가 되긴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집에 드러누워있다가는 다시 잠에 들겠구나 싶어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창에는 잔뜩 김이 서리고 그마저도 안개 낀 미래처럼 느껴진다. 정말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평일의 대부분은 긴장과 불안 속에, 주말은 약간의 휴식 속에 다시 내일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자주 두렵고 자주 불행하다 느껴지는 일을 정말 평생동안 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내가 이제 와서 다른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우울로 물든 마음을 가지고 걷는 연말의 거리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불행한 것 같은 기분에 또 쉽게 빠져든다.
나는 주로 마음의 우울감을 소비로 풀곤 해왔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소비가 주는 순간의 만족감과 기쁨을 끊어내기가 힘들었다. 쓸데없는 물건들을 싸다, 예쁘다, 나중에 필요할 것 같다 등등의 핑계로 잔뜩 사들였고 내 방은 온통 그런 것들로 뒤덮여버렸다. 그러다가 ‘작은 기쁨 채집 생활’이라는 책을 사서 읽게 되었는데 책 내용에서 저렴하다는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을 사기보다 좀 더 비싸더라도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기왕지사 소비를 할 거라면 마음에 드는 쪽을 고르자는 나름의 규칙을 세우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작고 아기자기한 것들이다. 특히 소품샵이 번성하고 다이어리 꾸미기가 활성화되면서 내가 좋아하는 각종 귀여운 캐릭터 스티커들과 용품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소품샵 투어를 하는 것이 내 취미생활의 하나가 되었다. 좋아하는 물품들로 가득한 공간에 들어서면 그 자체로도 조금은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특히 마음이 우울한 날이면 소품샵을 방문하곤 했다.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려서 오래 머물러있긴 힘들지만 사실 가능하다면 그 공간에 자리를 틀고 앉아있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의 마음속에 피어난 작은 로망은 훗날 나도 작은 소품샵의 운영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일을 하고 싶다. 물론 그 공간에서도 힘든 일은 어떤 식으로든 일어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 꿈이 나를 설레게 하기에.
겨울은 해가 빨리 져버린다. 우중충한 하늘에 한 줄기 햇빛이 비치는가 싶더니 금세 또 져버린다. 삶은 참 끝없이 우울하다가도 한 줄기 희망이 비치는 것 같으면, 그 빛줄기를 붙잡고 살아가는 것 같다. 포기하지 말자, 도망치지 말자, 한줄기 희망을 놓지 말자. 그렇게 되뇌며 차가운 공기 속을 걷고 또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