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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미진진한 독자 Mar 08. 2024

사람 손에서 대자로 뻗어 자는 새

우리 애들 습성은요


1. 사람과 함께 침대에서 자고 싶은 새

앵순이가 입양 왔을 때 새 보금자리치고는 럭셔리하고 폭신한 침구가 있는 새둥지를 장만해 주었다. 혼자 쓰기 넉넉한 집으로 뒹굴러 다닐 수도 있는 아늑한 집이었다. 하지만 앵순이는 따뜻한 사람 온기가 필요했던지 집보다 사람 손에서 더 많이 낮잠을 잔다.



사람과 새가 함께 잔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몸무게 65그램밖에 안 되는 연약한 몸을 지녔기 때문에 사람과 같이 자다가는 압사당할 수 있다. 새 고집을 못 이겨 한 번씩 손위에 모시고 낮잠을 잘 때도 있지만 새님이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하다 보니 사람이 선잠을 자게 되어 불편하다.



한 번은 엄마 손 위에 누워있다가 사람과 새, 둘 다 잠들었다. 앵순이를 들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 같은 모습으로 잠을 잤다. 이런 잠자리도 앵순이 에게는 위험하다.


예전에 남편이 자유의 여신상 자세로 앵순이와 함께 낮잠을 잔 적이 있다. 잠결에 남편이 자신도 모르게 손을 움켜쥐었고 손에서 자고 있던 앵순이는 놀라서 꽥하고 소리친 적이 있었다.


서로 사랑해서 절대 동침? 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2. 앵순이를 멀리 하고 싶은 주말 아침

주말 아침 늦잠은 직장인들에게 힐링 시간이다. 그 행복을 방해하는 귀여운 존재가 있으니…. 바로 앵순이다.


앵순이는 새랍시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누워있지는 않는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 대신 사람을 잡을 뿐이다. 늦잠 자고 싶은 가족들을 꼭 일찍 깨운다. 발칙한 점은 일어나서 응가 한 번 누고 본인은 다시 사람 손에 와서 잔다는 것이다. 다시 잘 거면 편안하고 넓은 새장에서 자면 되지 굳이 일찍 일어나서 가족들 다 깨워놓고 다시 자는 건 뭐람. 아마 혼자여서 외로웠나 보다.


앵순이와 함께 누워있으면 신경이 곤두선 채로 잠들기 때문에 꿈나라로 쉽게 입장하지 못한다. 결국 앵순이만 조금 더 자고 함께 일찍 일어나게 된다. 주말도 부지런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효녀 앵무새다.


주말에 늦잠을 자기 위해서는 방문을 잠그고 자는 전략을 써야겠다. 문 앞에서 오매불망 기다리겠지만 엄마도 주말에는 힐링 타임이 필요하단다. 앵순아~~.




3. 새로 태어나서 행복해요

사람으로 태어나면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아들은 학원 숙제하느라 고군분투 중인데 앵순이는 아들 손에서 쿨쿨 자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인간이 의문의 1패를 당한 순간이다. 아들내미를 인간이 아닌 새로 낳아주었더라면 공부 걱정 없이 쿨쿨 낮잠도 자고 근심·걱정이 없을 텐데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축복인 동시에 그만큼의 무게도 함께 지니 되었다.


숙제하던 아들이 "새 팔자 상팔자네"라고 한 마디 던진다. 오빠가 부러워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낮잠 자는 앵순이는 오빠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질책하듯 반응한다. 앵순이의 꿀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아들은 오랫동안 정자세로 앉아 공부한다. 앵순이 덕분에 오래 공부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 앵순이의 눈치 없는 낮잠이 불러온 긍정적인 효과다.


공부하는 오빠의 손뿐만 아니라 목덜미도 앵순이가 좋아하는 낮잠 장소다. 안 돌아가는 머리 굴리며 공부하느라 목덜미가 열기로 가득했는지 앵순이는 목 깊이 파고들어 더 오랫동안 잠을 잤다. 오빠의 공부 열기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상부상조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앵순이가 손에 누워 자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의 체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손 한 뼘만으로도 백허그를 해줄 수 있으니 아끼지 말고 넉넉하게 앵순이를 안아주어야겠다.


가족 4명! 손은 8개! 앵순이에게는 8개의 든든한 이동 침대가 있다!


엄지는 횃대로 나머지 손은 이불로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앵순이

*<개새육아> 매거진은 주 2회 발행합니다. 개이야기와 새이야기가 번갈아 업로드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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