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억, 볼티모어 이너 하버

미국 한 바퀴_대서양 로드트립 19

by 앤드류

도시가 바다를 되찾다, 볼티모어 이너 하버 (Baltimore Inner Harbor)


볼티모어 (Baltimore)의 중요한 항구 중 하나였던 이너 하버 (Inner Harbor)는 대서양에서 체서픽 베이 (Chesapeake Bay)를 따라 150마일(약 240km) 들어와 자리하고 있다.


이너하버는 18-19세기에는 대서양을 통해 온 화물을 미국 내륙으로 운송하는 중개항으로서 경쟁력이 있었으나, 20세기 들어 경쟁력을 점점 상실해 갔다. 원인은 이너 하버에 도착하기 위해 체서픽 베이를 따라 먼 거리를 항해해야 했던 배들의 부담과 미국 동부에 위치한 경쟁 항구들 (버지니아주의 Norfolk, 뉴욕주의 New York, 뉴저지주의 Newark, 조지아주의 Savannah)의 빠른 성장이었다. 1960년대 들면서 항구로서의 기능은 상실하고 도시와 단절된 채 사람들에게 외면당했다. 한 때 화려했던 항구에는 낡은 창고와 녹슨 크레인만이 남은, 사람들에게 잊힌 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바다를 포기하면 볼티모어는 존재 가치를 잃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정치인들은 낡은 부두 대신 시민을 위한 공원과 산책로, 상점, 문화시설을 세우는 획기적 항만 재개발 계획을 시작했다. 1958년 찰스 센터 프로젝트로 도심을 정비하고, 1963년부터는 240 에이커에 달하는 항만을 본격적으로 재개발하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1980년 개장한 이너 하버의 하버플레이스는 사람들의 발길을 바다로 되돌려 놓았다. 이어 국립 수족관, 과학관, 컨벤션센터가 들어서면서, 이너 하버는 볼티모어의 상징이자 도시 재생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오늘날 이너 하버는 세계 도시들이 벤치마킹하는 성공 사례가 되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바다와 도심이 다시 연결되었다. 그러나 그 후일담에는 그림자도 있다. 화려한 항구가 세워지는 동안, 도시의 빈곤한 이웃들은 여전히 소외되었고, 범죄와 불평등이라는 도시의 근본 문제는 항구의 빛으로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너 하버는 도시 재생의 실험이자, 바다와 인간이 다시 만나는 장이었다.


| 등대, 안전을 지키는 지혜


이너하버에서 눈에 띄는 등대가 있다. 1856년에 세워진 세븐 풋 놀 (Seven Foot Knoll Lighthouse) 등대다. 이 등대가 세워진 자리는 볼티모어 항구로 드나드는 길목, 수심이 얕아 배들이 쉽게 좌초할 수 있는 위험한 지점이었다. 1856년 당시 최신 기술이던 스크루 파일 방식으로 바닷 바닥에 철제 말뚝을 박아 등대를 올려 세웠고, 이 붉은 등대는 항구를 오가는 수많은 선박들에게 생명의 길잡이가 되었다. 기능을 다한 뒤에는 이너 하버로 옮겨져 오늘날은 바다의 위험을 막아낸 인간의 지혜를 증언하는 역사적 기념물로 남아 있다.


| 바다 위의 기억, 바다 아래의 침묵


볼티모어는 오랜 해양 도시였고, 전쟁과 평화의 이야기가 바다 위를 오갔다. 그래서 항구 재생의 과정에서 낡은 배들이 단순히 퇴역해 사라지지 않고 기념물이 되었다. 그중에서 전쟁에 참여해 나라를 지킨 두 기념물이 가장 큰 인기를 얻는다.


첫 번째로 잠수함 토스크 (USS Torsk)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잠수함이다. 일본 가까이 까지 진출해 전투를 치렀다. 잠수함의 비밀스러움과 치명적 위력은 많은 사람들이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한다.


현대에 이르러 잠수함은 더욱 치명적인 전략 무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무시무시한 무기의 성공적인 작전 수행은 승조원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수면 아래는 공포와 침묵의 세계다. 햇빛 한 줄기 없는 수심 200미터, 바깥은 고요하지만 내부는 긴장으로 가득하다. 작은 격실 속, 80명 남짓한 젊은이들은 90일 가까이 햇빛도, 별빛도 보지 못한 채 철벽과 바닷물 사이에서 호흡한다. 산소는 제한되고, 수면에 오를 수 없는 공포는 늘 따라다닌다. 최신 무기로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 무기를 운영하는 젊은이들의 희생이 너무 크다.


태니 (Taney)호는 이너하버를 지키는 또 다른 무기다. 1950년대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 지금은 항구에서 평화로운 모습으로 떠 있지만, 녹슨 철판 안에는 병사들의 긴박한 발걸음과 명령의 메아리가 여전히 들리는 듯하다.


| 바다와 도시, 재생의 드라마


이너 하버에는 세계적 규모의 수족관이 있다. 아이들은 유리 너머 푸른 세계를 바라보며 환호하고, 도시는 그 눈빛에서 미래를 본다. 죽어가던 항구가 다시 살아난 것도, 바로 이처럼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함께 세운 선택 덕분이었다. 아름다운 이너하버를 바라보며 인간의 기술 발전과 협조, 함께 미래를 위해 도전한다면 인류의 장래는 소망이 있다고 위로해 본다.


잘 조성하여 관리하고 있는 이너하버 풍경

워싱턴 DC 근교여행

|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에 참전한 미국 해안 경비정, USCGC Taney WHEC-37


| 파워 플랜트(Power Plant), 석탄 발전소로 사용되던 건물을 개조 복합 문화 공간으로 조성


| 볼티모어 이너하버 최고의 명소, 볼티모어 국립 수족관 (Baltimore National Aquarium)

| 볼티모어 이너하버 풍경


| USS 토스크 (USS Torsk, SS-423), 2차 세계 대전에서 활약한 미국 해군의 전투 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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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SCG 라이트쉽 체서피크 (LV116 Chesapeake)

: 체서피크만과 델라웨어만 입구의 피난항까지 배들을 안전하게 안내했던 등대선


| 라이트하우스 (Seven Foot Knoll Lighthouse)

: 1856년 건설된 메릴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나선형 철제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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