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 바퀴_대서양 로드트립 22
미국 사람들이 남부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노스캐롤라이나주 (North Carolina State)로 넘어가기 전 버지니아 비치를 방문한다. 사람들은 버지니아 비치를 뜨거운 열기와 웃음 가득한 축제의 해변이며 뜨거운 여름을 위한 최적의 장소로 기억한다. 6월에서 8월 사이, 모래사장에는 수많은 가족과 연인들이 몰려온다. 하지만 숙소 잡기도 어렵고 구한다고 해도 터무니없을 만큼 비싸다.
그러나 가을이 오면, 해변은 제 모습을 되찾고 바다를 즐기기 좋은 계절이 된다. 사람들이 뜸해지고, 숙박비가 내려가며, 대서양은 본래의 호흡을 되찾는다. 파도는 느려지고, 바다를 응시하며 생각에 잠기기에 제격이다.
| 케이프 헨리 등대 (Cape Henry Light House)
버지니아 비치에는 두 등대가 서 있다. 하나는 오래된 석조의 등대이고, 다른 하나는 철과 벽돌로 지어진 새로운 등대다. 1792년, 조지 워싱턴 대통령 시절 알렉산더 해밀턴의 명령으로 건립된 옛 케이프 헨리 등대 (Cape Henry Light House)는 미국 최초의 연방 공공사업으로, 미국의 탄생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등대 건물이 낡고 균열이 발생해 폐쇄하고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1881년 새로운 케이프 헨리 등대를 세웠다. 이 등대는 아직도 사용 중이다.
| 포카혼타스 -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
버지니아 비치가 특별한 이유는 1607년 4월, 영국에서 출발한 수잔 콘스턴트 (Susan Constant)와 갓스피드(Godspeed), 디스커버리 (Discovery) 세 척의 작은 배가 수개월간의 항해 끝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지쳐버린 선원들과 정착민들은 버지니아 비치 북쪽 끝 케이프 헨리 (Cape Henry)에 상륙하여 모래언덕 위에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살아남은 것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케이프 헨리에 상륙한 영국 정착민들은 며칠 머무르지 못했다. 바람이 거센 모래언덕은 은신처도, 식수도, 방어할 여지도 없었다. 그들은 다시 닻을 올리고 서쪽으로 이동해 체서피크 만을 건너 서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왕의 이름을 따서 제임스 강 (James River)이라 부른 넓은 강을 따라 항해했다.
버지니아비치에서 60마일(100Km) 떨어진, 버지니아주 남동부 해안에 자리한 그곳에서 그들은 1607년 5월 14일 목재 요새를 세웠고, 왕의 이름을 따 제임스타운(Jamestown)이라 불렀다. 그곳은 영국계 아메리카의 기초가 되었고, 신세계에서 영어와 영국 문화가 뿌리내린 첫 토대가 되었다.
제임스타운은 북아메리카 최초의 영구적인 영국 정착지였다. 생존과 이익의 욕망에서 태어난 이곳에서,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명을 받은 목재 거래용 버지니아 회사가 시작되었다. 질병, 원주민과의 갈등 속에서 식민지는 거의 붕괴할 뻔했으나, 이후 존 스미스 (John Smith)의 지도력과 존 롤프 (John Rolfe)가 들여온 담배 재배가 결국 그곳을 살려냈다.
존 롤프는 이후 포우하탄 (Powhatan)족 원주민 추장 워훈세나카 (Wahunsenacawh)의 딸 포카혼타스 (Pocahontas)와 결혼해 큰 주목을 받았다. 이 결혼 후 영국 정착민과 미국 원주민 포우하탄 족 사이에 평화가 유지되었다. 1995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도 이 결혼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 미국의 탯줄, 버지니아 비치
제임스타운은 곧 신세계에서 영국 제국의 씨앗이 되었고, 동시에 1619년에는 최초의 식민 의회가 열리고 첫 아프리카 노예가 도착한 곳이기도 했다. 그 해안에서 자유와 속박이 함께 태어났고, 야망과 인내가 뒤섞인 그 모순의 시작 속에서 훗날 아메리카의 성격이 조용히 형성되었다. 버지니아 비치는 새로운 미국의 시작한 정착민들의 상륙을 허락한 미국의 탯줄과 같은 곳이다.
| 버지니아 비치 Cape Henry에 있는 Old and New Light House 안내 사이트
| 1607년 4월 버지니아 비치 Cape Henry 상륙 기념물, Cape Henry C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