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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an de TJ Mar 24. 2024

세상이 무너지면 뭐라도 붙잡고 싶어진다

비밀요원의 특별한 능력들(2)

누… 누구세요?

야.ᐟ 내다. 빨리 문 열어라.

아.. 지훈이.. 알았어 잠시만…

나지막한 소리로 작은 원룸의 삐걱거리는 현관문을 열었다.


경만을 밀치듯 들어서는 지훈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마치 자기 집인 양 익숙한 듯 경만의 원룸에 있는 냉장고를 열어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아무래도 4층까지 뛰어온 모양이다.

평소에도 막역하게 지내던 친구였던 지훈은 경만과는

유치원 때부터 같이 다닌 그야말로 찐친이었다.




야.ᐟ 그 소식 들었냐?

어? 어떤..?

경만은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는 표정으로 지훈을 쳐다보았다.


아니 경영학과에 그 공부 잘하고 부지런하던 후배 동문이 있잖아.

잠시 생각을 하던 경만은 잠이 덜 깬 듯 눈을 비비며 동문의 얼굴을 생각했다.


어.ᐟ 그래 동문이.. 걔가 왜?

어.. 걔 어제 교통사고로 죽었단다.


어? 뭐라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경만에게 지훈은 깊은숨을 몰아쉬며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아니 그 녀석 진짜.. 너무 착했던 녀석이잖아.

동문이가 알바를 여러 개 하는 거는 알지?

너랑 꽤 친하게 지냈던 거 같은데 말이야.


나도 걔랑 같이 겹치는 알바가 있어서 알게 되었는데

어제 편의점 사장님이 갑자기 동문이가 못 나오니

나보고 대신 땜빵을 좀 해줄 수 있냐는 거야!


그래서 왜 못 나오냐고 그랬더니

어제 새벽에 집에 가던 길에 취객을 도와주다가

뒤에서 오던 차에 들이 받혔다고 하더라고.

근데 그 차를 들이받은 사람이 뺑소니를 쳤다는 거야.


아…. 어떻게 그런 일이…

경만은 동문과의 기억을 되새기며,

안타까운 소식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잠시 말을 잃어버렸다.


단전 끝에서부터 끌어 오르는 분노가 경만의 눈에 서렸다.

경만의 눈은 불현듯 피가 끓는 듯 붉은빛으로 감돌았다.


아니 근데 말이야.. 진짜 우리 사장 너무 하지 않냐?

일하던 애가 죽었다는데 지금 자기 가게 일할 사람 없다고

내한테 저래 연락하는 거 보면 어이가 좀 없네.


암튼… 내가 좀 경황이 없어서

뭐라 대꾸를 못했는데 일단 걔 장례식에는 좀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그냥 그만둔다 하고 뛰쳐나왔어.


아.. 그랬구나..

잘했다. 그래 지금 갈 거야?


경만의 붉어진 눈에 놀란 지훈은 경만에게

조금은 진정된 말투로 물었다.

어 그래.ᐟ 너도 같이 갈래?


그래 가봐야겠어.

이렇게 걜 보낼 순 없지.ᐟ


너.ᐟ 뭐 동문이랑 그 정도였냐?


동문이 한 테 내가 빚진 게 많아서 말이야..

늦었지만 그래도 빈소라도 찾아가서

전하지 못했던 말이라도 하고 싶네.


근데 넌 어떻게 나한테 올 생각을 했냐?


그래.. 안 그래도 걔가 부모님도 없이 할머니랑 같이 살았잖아.ᐟ

할머니가 많이 놀라셨을 거 같은데 혼자 가려니

도저히 발이 안 떨어져서 너랑 같이 가려고 왔지.


그래.ᐟ 그럼 좀 씻자.

나도 방금 일어났어.





경만은 동문에게 진 소소한 빚들이 많았다.

오지랖이 넓은 탓에 자기 용돈도 남김없이 털어서 남에게 쓰다 보니

경만은 늘 호구선배로 불렸는데 정작 경만이 힘들고 어려울 땐 도움을 주는 이가 없었다.


그때 우연히 만난 같은 과 후배 동문에게 도움을 여러 번 받았는데

동문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 적도 많았다.


버스 막차를 타야 하는데 버스카드를 하필 잃어버렸을 때

동문에게서 도움도 받았고,

 

비록 캠퍼스 커플이 되진 못했지만 민지에게 고백하도록

도서관에서 다리를 놓아주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수강신청을 해야 하는데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경만에게

능숙하고 빠른 클릭으로 도움을 주었던 이도 동문이었다.


후배였지만, 늘 선배처럼 의젓한 동문이가

그 착하디 착한 아이가 어이없게 죽었다니…


도대체 신은 세상에 있기나 한 건지…

경만은 이 세상에 이렇게 착한 아이가

말도 안 되는 사고를 겪고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경만은 조용히 머리를 감기 위해

샤워기를 틀며 머리에 물을 적시며

믿기지가 않는 소식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오늘은 스물다섯 번째 동문의 생일이었다.





우주피스 공화국의 비밀요원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꿈속에서 주파수가 맞아지면,

과거의 시간으로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때에나

원한다고 다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라클’이 승인한 건에 한해 가능한 것이었고,

비밀요원의 능력치에 따라 과거로 이동해서

행할 수 있는 능력은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비밀요원이 많은 복을 지을수록  

과거로 이동해 바꿀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


그러나 그만큼 복을 써버리면

선한 일을 해야만 생명이 줄어들지 않았다.


만약 한도를 초과해서 사용해 버린다면,

인간세상에 임시로 파견되었던 비밀요원의 여권은 만료되어

더 이상 우주피스 공화국으로 입국하지 못하게 되었다.


우주피스 공화국에 입국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예외조항이 있었다.


적정한 자격을 갖춘 새로운 비밀요원을 발굴한다면,

우주피스 공화국에 입국할 여권이 연장되며,

그의 능력은 새로운 비밀요원에게 점차 옮겨지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비밀요원이 될지 말지는

‘미라클’이 결정하지만 말이다.


 


비밀요원에게는 이승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그야말로 필요한 최소한의 권능만이 허용되었다.
‘미라클’이 허용한 딱 그 범위 내에서 말이다.

물론 그 허용한도는 ‘미라클’ 말고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경만은 지훈과 함께 장례식장 입구 앞에 섰다.

지훈은 담배를 피우며 한숨 섞인 연기를 뿜어댔다.

눈이 퉁퉁 부은 경만은 담배 연기가 싫었지만

그렇다고 지훈과는 떨어져 있기는 싫어서

조금 비켜난 옆에 서있었다.


동문은 힘든 알바를 마치고 가는 길에

도로 중간에서 쓰러져 자고 있는 취객을

일으켜 인도로 옮기던 중에 사고를 당했고,


사고가 난 이후 젊은 남자 운전자와

동승했던 젊은 여자는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가누며,

재수 없네라는 말을 남기고

현장을 유유히 떠났다고 한다.


목격자들은 분명히 술을 마셨거나

약을 한 게 분명하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경만은 동문의 티 없이 밝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을 보며,

한없이 울고만 있던 동문의 할머니를 생각하며

분노에 찬 얼굴로 지훈을 노려보며 말했다.


지훈아.ᐟ

그 나쁜 놈 어떻게 좀 잡을 방법이 없겠냐?


글쎄… 경찰이 CCTV로 추적하고 있다니

일단은 기다려봐야지..


야 인마.ᐟ 그걸 몰라서 묻냐?

경찰행정학과 출신이면

뭘 좀 더 아나 싶었더니.. 쳇…

나도 안다고…


머쓱해진 지훈은 먼산을 쳐다보며,

연신 담배연기를 뿜어댔다.


근데 어쩌냐..

우리 동문이….

와.. 진짜 신은 뭐 하냐?

그런 놈들 잡아서 벌 안 주고…


그렇게 자조 섞인 말을 하는 순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여인이 다가와

경만에게 눈을 맞추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ᐟ

마치 경만을 잘 안다는 듯한 표정의 여인은

경만에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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