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an de TJ May 26. 2024

백마 탄 악마를 사랑한 여인

인연을 따라간 인생, 사막에도 꽃은 핀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산산이 부서졌다를 반복했다.

바다가 들려주는 굉음은 마치 대자연의 어머니가 외치는 호통에 가까웠다.

그런 파도소리를 맞으며 눈을 게스츰레 뜨며

2월의 차가운 바다 한가운데를 응시하는 남자가 있다.


희동이었다.


바람결에 머리가 휘날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그는 그의 길을 걸어갈 뿐이었다.


창백한 그의 얼굴에 이따금

바람이 불어와 뺨이 얼어붙었으나

그때마다 자신의 뺨을 쓰다듬으며,

모래사장을 걸었다.




길고 긴 진술과 조사에 시달렸던 희동은

꽤나 오랜만에 휴가를 나와 바깥공기를 마시고 있던 차였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작은 커피숍의 문이 열리자마자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까랑까랑한 여자 목소리가

희동을 반겼다.


“어서 오세요~.ᐟ”

점잔을 빼는 희동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네…..”


어리숙해 보이는 남자에게 익숙한 듯 말을 건네는데

“뭘로 드릴까요?”라는 말에 희동도 흥미가 생긴 듯 말을 걸었다.

“뭐 있는데요?”


슬쩍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잃지 않고, 그녀가 말했다.

“맛있는 커피가 있지요.”

희동은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커피 아무거나 주세요..”


커피를 타며 그녀는 허여멀건한 얼굴의 젊은 남자에게

흥미가 생긴 듯 말을 이어갔다.

“군인? 휴가 나왔나 보네.. 그쵸?“


희동도 그녀의 귀찮은 질문이 싫지는 않았다.

”그래.. “

모자챙 너머로 슬쩍슬쩍 쳐다보니

하얀 피부에 꽤나 귀여운 인상이라

자꾸 눈길이 갔다.


송일병 총기사고 이후 부대에서 꽤 오래도록

외부로 나올 수 없었는 데다 오랜만에 본 젊은 여성이었다.

게다가 베티 이후로 이렇게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건

꽤나 오랜만이었기 때문이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그녀는 자신은 이제 갈 데가 없다는 둥

누군가 나를 좀 데려갔으면 좋겠다는 둥

혼자서 신나게 떠들던 통에

희동은 잠시 머리 아픈 일들을 잊었다.


그냥 편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 자체가

힐링이었다.


“너 이름이 뭐냐?”

“나? 연희..”


이상한 감정이었다.

마치.. 예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편했다.


처음 본 사이였지만,

희동은 그녀를 자신의 하얀색 스포츠카에 태우고,

어디론가 향했다.






연희는 희동과 만난 이후

희동이 제대를 하기까지

물심양면 뒷바라지를 했다.


그런 그녀의 노력과 정성이

희동에게 통했던 걸까..

희동은 제대 이후 연희와 함께 지낼 방도

구해주며 함께 생활했다.


오래도록 방황하던 희동에게

연희는 잠시나마 쉴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연희 역시 희동의 배려에

그나마 사람다운 삶을 사는 중이었다.




“제발.ᐟ 좀…  세상에 없는 듯이 죽은 듯 살아~.ᐟ”


마치 손에 베일 듯이 시퍼런 칼날을 만지듯

희동의 심장을 난도질하는 말이

희동의 귓전을 때렸다.


“세상에 없는 듯이…” 희동은

이 말을 입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희동의 부는 이번이 벌써 3번째 도전이었다.

그리도 되고 싶은 선출직 선거에 나가야 했으니

문제만 일으키던 희동에게

“제발 죽은 듯 지내라.

사고만 치지 말라. “는 당부는

어쩌면 희동 부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악어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했던

희동 모는 희동에게 원하는 돈은 다 줄 테니

조용히 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희동은 외국생활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는 있었지만

늘 혼자인 채 지냈다.


그래서였을까?

그런 희동에게 연희는

늘 희동만을 바라보며,

희동의 심기를 맞추려

눈치만 살폈는데

희동은 그런 연희가 좋았다.


“야.ᐟ 너는 내가 어디가 그리 좋냐?”

“나? 다 좋지~! 난 희동이뿐이지..”

가슴을 파고드는 연희의 애교에

희동은 심장이 간질여지고 웃음이 실실 났지만,

티 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럴수록 연희는 더욱 희동을 파고들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연희는 지금의 이 구렁텅이에서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 나타난

백마 탄 왕자,

그가 바로 희동이었다.




그렇게 연희는 임신을 했고,

희동은 연희가 임신한 것을 안 이후 연희를 떠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희동이 연희가 살 집은 두고 떠났고,

연희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태어날 운명이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서아’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이전 11화 미소 속에 숨겨진 잔인함, 극한의 어둠에서 빛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