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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an de TJ May 13. 2024

아무도 모르는 사이, 악마의 자식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서커스 공연 제1 막 ‘베티의 무한그네’

4월 2일.


햇살이 쨍한 오전,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에

희동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위….… 잉..”

반질거리는 하얀 골프공이

녹색의 인조잔디 사이 구멍에서

고무로 된 티 위에 얹어진 채 올라왔다.


“툭..” 익숙한 놀림으로 아이언으로 골프공을

인조잔디 위로 옮겼다.


희동은 자신의 목에 걸린

블랙 다이아몬드 펜던트를 만지작 거렸다.


그것은 그의 오랜 습관이자

불안을 숨기기 위한 루틴.


손에 묻은 땀이 펜던트에 닦여지는 찰나,

다시금 드라이버를 손에 쥐고

허공을 대고 빈 스윙을 해댔다.


바람을 가르는 드라이버의 소리가

주변을 어지럽히는 통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신경이 쓰였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슈~~~ 욱 ,  깡….”

드라이버에 맞은 골프공이 바람을 가르며,

시원하게 허공을 질렀다.


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배웠던 운동이

골프였기에 희동의 몸동작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희동은 잠시 눈을 감고, 어제 일어난 일을 생각했다.

멀리서 까마귀가 비웃기라도 하듯 멀리서 우는 소리가 들려오자

하늘을 올려다보며 실눈을 뜨자 눈밑에 생긴 흉터에 주름이 지어졌다.


“ㅆㅂ…  아 그 병신 같은 새끼.... 죽었겠지? “

“아씨… 몰라~~ 뒤질 놈은 뒤질 팔자인거지 내알빠노.ᐟ”


희동은 가래가 낀 듯 기침을 헤대더니

오물이 목구멍 너머로 넘어오기라도 하는 듯

연신 기침을 해댔다.




희동은 어릴 적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고,

특히 리투아니아에서 꽤 오래도록 있었다.


셋째이자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희동은

머리가 좋고 똑똑했던 누나와 형과는 달리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의 부모 역시

희동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희동은 늘 제 멋대로 행동해도 괜찮았고,

그저 뒤늦게 얻은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실수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학교를 가면서

도를 넘기 시작했고, 아이들을 괴롭히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학교의 문제아 중의 문제아로 분류되었다.


하루는 그가 친구들과 함께 숲에서 잡은 뱀을

동급생의 가방에 집어넣고, 손을 넣게 시키거나


어깨가 부딪히고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왕따를 시키는 것도 모자라 온갖 욕설과 협박에

폭행을 일삼아 괴롭힘을 당한 아이는 자살기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번번이 희동은 형사미성년자로 촉법소년의 면책을 받았다.


그때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희동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그의 악랄한 서커스 공연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희동의 첫 번째 서커스 공연의 주인공은

같은 동네에 살던 ‘베티’였다.


베티는 주근깨가 많은 붉은 컬의 머리를 가진 여자아이였다.

이제 막 13살이 되던 해,


베티는 그래도 같은 동네에 사는

한국의 외교관의 막내아들을 꽤나 멋지게 생각했다.


그래서 베티는 희동이 집을 나서는 시간을 계산해

그가 문을 나서고 자신의 집 앞을 나설 즈음

문을 열고 나가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ᐟ 나 너를 여러 번 봤어. 너 저기 오렌지 색 지붕 집에 살지? “


희동은 뭔가 걸리적거리는 느낌이라 생각하고는

“그래서 뭐?”


멈칫한 베티는 예상치 못한 답변에 우물쭈물거렸다.

“뭐야.. 꺼져.ᐟ” 한 마디에

베티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 희동이 앞으로 걸어가다

잠시 오른쪽 볼을 씰룩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이거 재밌겠는걸?”


그때부터였다.

희동은 베티를 학교에서 여러 번 주시하며

베티가 하는 대화소리, 웃는 얼굴, 몸짓을 쳐다보았다.


할 말이 없을 땐 오른발로 킥을 하는 습관까지

희동은 베티를 파악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베티는 마을의 중간에 있던 놀이터에서

혼자서 그네에 앉아 오랜 시간을 보냈다.


마을은 있지만 집들이 띄엄띄엄 있는 탓에

같이 놀 아이들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베티는 여느 때처럼 놀이터에서

혼자 큰 그네를 타고 있었다.


땅거미가 지는 저녁시간이 되었지만,

베티의 부모는 먼 도시로 아침 일찍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끼리… 잉… 슥…“ 오래된 그네의 줄과

쇠로 된 버클이 부딪히며 듣기 싫은 소음이 울렸다.


희동은 베티에게 조용히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얼마 전엔 내가 좀 심했어. 미안” “난 몰렉이야”

베티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호감을 갖고 있었던 희동이 살갑게 다가오자

이내 경계를 풀었다.


몰렉(Moloch)은 희동이 지은 이름이자 어린이의 제물로 알려져 있는 악마 이름으로 어린이에 대한 학대와 인신매매를 저지르는데 인간들에게 어린이에게 잔인한 행위를 저지르도록 유혹한다.


다리를 모으며, 치마 위에 손을 살포시 얹은

베티를 보며 희동은 미소를 지었다.


희동은 목에 걸린 펜던트를 만지작 거리며,

베티에게 자신이 애정하는 목걸이를 보여주었다.


“이거 이쁘지? 이거 우리 아버지가 사주신 선물이야.”

“응.. 이거 뭐야? 대개 반짝 거리네. 이쁘다.” 라며

베티는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보였다.


희동은 이내 신이 나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이게 블랙 다이아몬드라는 거야. 알아? “

“세상에서 가장 딱딱한 보석이지.”라며

침을 튀기며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이게 정복, 초월, 꺾이지 않는 힘이지..”

“악마조차도 원한다는 강력한 힘을 지닌 보석이란 말이야.”

라고 설명을 하자 베티는 희동의 기분을 맞추려는 듯

연신 미소를 보내며 감탄을 했다.


“와.. 나도 한번 만져봐도 돼?”

이 말을 들은 희동은 눈빛이 갑자기 돌변했다.


“그럼.. 네가 나랑 같이 놀아주면 말이지.”

하며 희동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베티의 두 눈을 응시했다.


베티는 어금니까지 보일 정도로 크게 웃으며

’그럼~ 나도 너랑 놀고 싶었어.‘라는 마음을 내보이듯

말을 이어갔다.


“그럼~ 같이 놀자. 어차피 오늘 부모님은 늦게 오실 거니까.”


“그래? 잘됐네.”라며 “그럼 ”내가 네가 좋아하는 그네 밀어줄게 “라며

그네에 앉은 베티 뒤로 희동이 돌아섰다.


“좋아~.ᐟ 그럼 밀어줘.ᐟ 아주 세게 힘껏 말이야! 헤헷.ᐟ“

그러자 희동은 미친 듯이 웃어대며, “그래? 네가 원한 거다? 맞지?”라며

베티가 앉은 그네를 힘껏 밀기 시작했고,

“제발.. 그만…”이라는 비명이 들리는 와중에도

희동은 밀기를 멈추지 않았다.



베티는 어지러운 바깥 풍경이 지옥의 문을 열고

들어선 한 소녀에 불과했고,

그녀는 뱉어서는 안 될 말을 스스로 내뱉었음을 직감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몰렉의 유희는 “무한 그네”라는 1막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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